▲ 허찬 울산스마트동물병원장

수의사로서 반려동물을 진료하다보면 황당한 경우도 많고 정도가 지나쳐 분노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보호자의 자가진료 결과 가벼운 질환이 터무니없이 악화돼 내원할때 더욱 그렇다. 보호자들에게 점잖은 말로 타이르는 것으로 그치지만 상황이 심각할 정도로 방치되었거나 그 의도가 반려동물에 대한 생명존중의 의식이 결여된 상황에서의 결과에 대해서는 분노를 금할길이 없어 잠시 침묵으로 이를 표시하기도 한다. 반려동물도 생명체다. 인간과 특히 그 보호자와는 상당한 수준의 감정-즐거움이나 슬픔, 분노와 고통같은-을 교감하게되는 반려동물의 생명은 더 소중하게 여겨져야 한다.

필자가 경험한 자가진료의 잘못된 경우는 가벼운 것에서부터 심각한 경우까지 있었다. 인터넷과 주변의 조언을 듣고 예방접종을 했지만 감염돼 피부괴사가 진행된 경우가 있었고, 강아지의 구내염에 사람치료제를 상당기간 사용한 결과 스테로이드제재 부작용이 온 경우도 있었다. 또 강아지가 혈뇨를 하자 항생제를 투약하다가 증상이 심각해져 내원, 진료 결과 방광결석으로 밝혀져 치료한 경우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치료에 더욱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게 될 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에게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주게 돼 수의사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가진료는 대개 진료비를 절약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는데, 거듭되다보면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 특히 식용견 사육장(개농장)이나 강아지 번식장(강아지공장)에서 대부분 자가진료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열악한 사육환경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질병을 무분별한 항생제 투약이나 적정량을 초과한 약물의 사용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항생제 내성세균을 만들어내고 허약한 강아지를 생산하게 돼 소비자의 피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오는 7월1일부터 자가진료행위를 금지하도록 수의사법이 개정·시행되는데 얼마나 잘 지켜질 수 있을 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일부 동물약국판매종사자들이나 반려동물 보호자들의 주장으로 4종예방접종을 비롯한 피하주사는 자가진료를 허용하자는 움직임이 있어 우려스럽다. 일정 기간 이상의 전문지식에 대한 교육을 받고 이를 수행하는 부수적 기능을 숙련되게 훈련받은 사람에 의해서 의학적으로 필요한 환경과 조건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진료행위이다. 예방접종을 위한 피하주사 또한 중요한 진료의 한 방식이다. 자신이 사육한다고 해 이러한 진료행위를 허용한다고 하면 잘못된 방식의 주사나 의학적으로 청결하지 못한 환경에서의 주사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또 개사육농장이나 강아지번식장에서 이뤄지는 자가진료 대부분이 피하주사 형태로, 허용된 예방접종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힘들고 감시·감독도 어려워 수의사법 개정이 유명무실해질 우려가 있다.

또 피하주사허용을 두고 유기 반려동물보호소 관계자들이 진료비 부담을 들어 자가진료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기반려동물 문제는 사회·제도적 환경 개선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자가진료 문제는 원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동물의료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정책적으로 활성화시킨다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허찬 울산스마트동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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