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비스런 남인도의 전설 마말라푸람(mamallapuram). 암굴사원의 초기적 형식으로부터 석조건축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도양에 면한 인도 남동부의 마말라푸람
거대한 바위절벽에 조성된 힌두의 신전들
1500년전 건축양식 오롯한 판차 라타스는
정교한 조각에 종교적 외경은 못담아낸듯

바위산 깎아 만든 화려한 신전이 없어도
있는 그대로 바위에 아로새긴 깊은 신심
경주 남산의 마애불과 석굴암이 떠올라

다시 기차를 타고 타밀라두로 향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기차여행이지만 몇 번의 경험이 사람을 익숙하게 만든다. 게다가 7시간만 버티면 도착하는 거리이기에 큰 부담은 없다. 첸갈파투는 인도대륙의 남동부 인도양에 면한 도시이다. 여기에서 신비스런 남인도의 전설 마말라푸람(mamallapuram) 유적과 조우한다. 신라시대 경주의 남산이라고나 할까. 나지막한 바위산에 수많은 전설과 역사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이 유적군은 6~9세기 이 지역을 통치했던 팔라바(Pallava) 왕조 때 조성된 것이다. 팔라바왕조는 동남아 일대의 많은 국가들과 교역하고 스리랑카까지 침공했던 해양강국이었기에 당시 이 도시는 국제항구로서 융성했다고 한다. 타밀인들의 교역이 동남아 지역까지 영역을 확대해 감에 따라 팔라바 건축은 베트남 남부에 자리했던 참파 양식의 원조가 되기도 했다. 또한 마말라푸람은 암굴사원의 초기적 형식으로부터 석조건축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유적이기도 하다.

유적군은 암반으로 이루어진 바위언덕 여기저기에 산재한다. 마치 경주 남산처럼 바위를 파거나 새기는 수법으로 사원과 사당을 조성했다. 가장 유명한 유적은 아르쥬나 고행상(Arjuna’s Penance)이다. 거대한 바위절벽에 단애에 빈틈없이 새긴 이 부조는 서사시 <마하바라타>에 기술된 힌두 신들의 신화를 표현한 것이다. 7세기경 불교에 대한 힌두교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라 하는데, 토착신앙인 힌두이즘과 여기에 반기를 든 불교 이념 사이에 치열한 투쟁이 있었음을 반영한다. 결국 지배 권력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 보수이념이 승리하게 되고 이를 선전하는 국가적 프로젝트로 조성되었을 것이다.

이 거대한 벽면부조 이외에도 많은 석굴사원이 바위언덕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석굴을 파면서 건축형식을 갖춘 것으로부터 석굴사원 앞에 열주로 만든 포치를 축조한 유형, 그리고 석재로 축조한 석조 사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을 보여준다. 심지어 성채처럼 성벽을 두르고 내부공간을 갖춘 곳도 있다. 이들은 석굴사원으로부터 석조건축으로 발전하는 과정적 단계를 설명한다. 석굴사원들은 음영이 드리워진 깊고 어두운 석실 속에서 용맹하거나 아름답게 부조된 힌두 신들과 마주하게 만든다.

마말라푸람의 조성은 정치적 목적 이외에도 기복적 염원이 담겨 있다. 토굴사원이 융성했던 돈황을 연상시킨다. 돈황이 실크로드로 향하는 사막의 관문에 조성된 것이라면 이곳은 인도양으로 향하는 남인도 제국의 관문이었을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여정을 출발하는 사람들이라면 여정의 무사함과 안전한 귀향은 신에게 기원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곳을 드나드는 이방인들에게도 그 관문에서 힌두교의 위세를 앞세운 왕국의 위세를 과시하고 싶었으리라.

이 유적군에서 가장 판타지(Fantasy)에 가까운 것은 판차 라타스(Pancha rathas)이다. 그 이름은 5개의 정각식 사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말 그대로 다섯 건물로 이루어진 석조사원이 무리지어 있다. 1500년 전의 건축양식이 세부장식에 이르기까지 온전하게 남았다는 점에서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그러나 더욱 경이로운 사실은 이들이 석재를 쌓거나 조립하여 만든 건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맙소사! 그 모든 건물들이 하나의 바위를 파고 깎아서 만든 건물모습의 조각 작품인 셈이다. 물론 이러한 조각들을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처럼 실제 건축물처럼 스케일이 큰 조각품은 보느니 처음이다. 모든 조각품들은 기단과 기둥, 벽과 창호, 지붕 등 건축적 요소를 충실하게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내부공간을 두기도 했다. 건축요소와 장식의 사실적 표현은 건축과 조각의 경계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며 섬세하다.

이는 거대한 바위를 건축으로 만드는 해리포터 급 마법에 해당한다. 하지만 신기하고 정교한 조각품을 감상하는 이상의 감흥을 자아내지는 못한다. 종교건축으로서 숭고하거나 장엄하지도 않고, 종교적 신비나 외경을 불러내기에는 너무 유치하다. 마치 힌두신전의 다양한 모델하우스를 전시하는 전시장을 둘러보는 것 같다.

마말라푸람은 경주 남산을 되돌아보게 한다. 경주 남산의 그 어느 유적에서도 바위를 깎아 건축을 만든 사례는 본적이 없다. 남산의 부처들은 집도 없이 바위에 새겨져 있지만 누구도 노숙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남산은 거대한 부처의 집이며 부처는 어디에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운 산을 허물고 깎아 부처의 집을 만들 이유가 어디에 있으랴.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산 속 깊이 앉아계신 부처라면 토함산의 석굴암에서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석굴을 파내어 지은 것이 아니라 석조로 공간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어 석굴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이처럼 거대하고 아름다운 부처의 집이 또 어디에 있으랴. 그 공간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으나 화엄세계의 장엄한 기운으로 채워졌다. 인도인들이 화려한 신전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면 신라인들은 대자 대비한 불성을 만드는데 정성을 쏟았던 셈이다. 손가락이 아닌 달을 직접 바라보게 한 것이다. 바람결에 송창식의 토함산이 들려온다. ‘터져 부서질 듯 미소 짓는 님의 얼굴에 천년의 풍파세월 담겼어라.’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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