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은 길이 아니었다.1

슬픔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중략-
오래 된 나무가 새벽에 추락했다
순간, 하느님도 보이지 않았다
대낮인데도 박쥐 떼들이 야자나무 벼랑에 가파르게 달려 소리치고 있었다
갑자기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 마구 뒤엉켰다
오래된 숲과 숲 사이로

지금까지 내 몸이 끌고 온 길은, 길이 아니었다

슬픔은 예고 없이
피투성이

얼굴로 찾아왔다

▲ 엄계옥 시인

사고는 예고 없이 덮친다. 만약 우리 몸의 뼈가 몸 밖에 있었다면.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뼈를 몸 안에 가둠으로 사고로부터 이중 잠금 장치를 한 셈이다. 소설은 형식에서 날이미지를 차용하지만 시는 발화방식에서 날것이 온다. 이 시는 파푸아뉴기니 오지에서의 사고를 날이미지로 이야기 하고 있다. 성당은 몸이 구원을 받는 곳이다. 백년 전통의 울링간 성당에 가 본적은 없지만 시를 대하는 순간 구도의 땅 티베트에서 응급실에 실려 간 날이 떠올랐다. 우리는 몸밖에도 길이 있지만 몸 안에는 영혼 길이 있다. 영혼 길은 응급할 때 무의식적으로 내달리는 길이다. 그 길에 ‘하느님은 계셨다.’(강순아)고 하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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