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경주방문때 쓴 붓글씨
20여년만에 첫 공개 이목집중

▲ 기성 오청원(가운데)이 지난 1992년 5월8일 경주 힐튼호텔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는 모습.

기성(棋聖)은 바둑계에서 뛰어났던 인물을 일컫는 것으로, 시성(詩聖)이나 악성(樂聖)과 나란히 쓰인다. 수천년 바둑 역사에서 기성이라 불리는 사람은 단 5명 뿐. 중국에서는 북송(北宋)의 유중보(劉仲甫), 청나라 때의 황월천(黃月天), 일본 바둑사에서는 도사쿠(道策)와 슈사쿠(秀策), 현대바둑에서는 중국 출신의 오청원(吳淸源·1914~2014)을 가리킨다. 그 중 오청원은 사후에 칭호를 받은 네 명과 달리 생전에 이미 기성으로 불리며 전 세계 바둑인들의 추앙을 받았다.

기성 오청원이 남긴 붓글씨 1점이 최근 울산에서 공개돼 지역 바둑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해당 작품은 울산시 북구 호계기원(농소중 앞)에 가면 볼 수 있다. 내용은 ‘手談和氣得自然(수담화기득자연)’. 바둑을 두게되면 부드러운 기운으로 자연을 얻는다는 의미다.

오청원은 1914년 중국 푸젠성(福建省) 푸저우(福州)에서 태어나 7세 때 바둑을 시작했다. 14세에 일본으로 유학, 당시 일본 바둑계의 유력 인사였던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의 제자로 들어갔고 1933년에는 기타니 미노루(木谷實)와 함께 신포석(新布石)을 만들어 현대 바둑의 창시자라고 불렸다. 신포석은 흉내 바둑, 3·3, 화점, 천원 착점 등 400여 년 동안 통용됐던 전통적 일본 실리 포석에서 벗어난, 바둑계의 혁명으로 평가된다.

▲ 기성 오청원이 남긴 서예작품 ‘手談和氣得自然(수담화기득자연)’.

호계기원에 걸린 서예 작품은 경주지역 바둑인들의 모임 현도회의 초청으로 지난 1992년 오청원이 경주를 방문했을 때, 숙소인 힐튼호텔 연회장에서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쓰여졌다. 20여년 넘게 공개되지 않았으나, 최근 김종환 호계기원 원장이 기원 벽면에 이를 내걸면서 소문이 퍼지게 됐다.

김 원장은 “현도회 사범이었던 김봉환씨가 내 큰 형님이다. 형님에게서 작품을 받은 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기원에 내걸었더니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판매의사를 묻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오청원의 경주 방문 일화를 곁에서 지켜봤다는 김 원장은 “기성 오청원은 글씨를 잘 남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휘호를 쓸 때는 글자 한 자 한 자에 정성을 다했다. 아내되시는 분에게 도장을 가져오게 한 뒤, 마지막 낙관을 찍는 순간까지 연회장 분위기가 그렇게 숙연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홍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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