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국애 울산과학고 교사

따뜻한 햇살로 벚꽃을 수놓던 봄이 가버리고 여름으로 내딛자마자 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작년까지 날씨 걱정은 안했는데 우리 학교 텃밭을 담당하게 된 올해 유독 날씨에 민감해졌다. 우리 학교는 유네스코학교로 지정돼 몇 년째 울주군의 지원으로 학교 텃밭을 운영해 오고 있다. 유네스코학교란 유엔에서 지속가능 발전을 위해 전 세계 학교의 유네스코 인증 제도를 부여하는 것으로, 이러한 지원으로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체험의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우리 학교는 텃밭을 운영하는 녹색성장동아리 외에 지역의 아동을 돕고 문화를 체험하는 온정나눔동아리와 매직동아리가 지원을 받고 있다. 다른 동아리와 달리 녹색성장동아리는 직접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많은 학생들이 지원했다가도 힘들고 익숙하지 않는 농사일을 접하다보면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다. 더구나 전혀 화학적 비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잡초와 농작물이 한데 섞인 밭고랑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대부분 도시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에게 여간 힘든 것이 아닐 것이다.

올해는 일학년 학생들이 수박을 키워보고 싶다고 해 모종 6개를 샀다. 사실 이번에는 수박을 재배하지 않으려고 했다. 작년에 수박 10개를 심었는데 수박이 채 익기도 전에 따 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따가운 햇볕을 받아 한창 맛있는 꿈을 꾸고 있을 쯤 자라는 수박마다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누군가 검은 줄무늬가 선명하게 그려진 겉모양만 보고 수박을 따 간 것이다. 나 역시 선명한 색깔을 보며 수박 한 개를 따 와 갈랐는데, 자르고 나서야 뭔가 일이 잘못된 것을 알았다. 아직 희멀건 수박 속을 보고서야 ‘좀 더 두었더라면….’ 후회가 밀려 왔다. 그러나 이미 두 동강난 수박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심지 않겠노라고 마음먹었는데 수박을 키워보고 싶다는 학생의 부탁으로 6개만 구입하고 그 학생에게 이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학교는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진 사회다. 일정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너무나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다.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그들 제각기의 능력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수업 시간에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던 섬세함이 청소 시간에 드러나기도 하고, 수줍음이 많아 발표는 아예 생각도 못했던 학생이 이듬해 교내 낭송대회에 자원하는가 하면 또래 아이와 심하게 장난치는 학생이 아름다운 글씨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마냥 신기하다. ‘저런 아이는 이럴 거야’라는 섣부른 판단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일곱 개의 색깔들이 모여 하나의 무지개가 이루어지듯 개개의 안에서도 서로 다른 특성들이 어우러지며 이 세상을 또 다른 색깔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겉모습이 전부인 양 판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편견으로 그 학생의 숨은 끼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보다 안타깝고 후회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설익은 수박을 따 버리는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그들의 빛깔을 인정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국애 울산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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