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차바’로 울산시 중구 태화동 일원에 발생한 침수피해 원인규명조사를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한국방재학회에 의뢰한 용역 결과가 분란만 키우고 있다. ‘객관적·과학적 연구결과’라는 신뢰를 기초로 이해당사자가 납득할만한 결론을 도출함으로써 갈등 해결의 단초가 돼기는커녕 한쪽으로부터 ‘짜맞추기식’이라는 비난의 대상이 됐다. 무엇을 위한 용역이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한국방재학회는 ‘태풍 차바로 인한 울산혁신도시 주변 침수피해 원인 분석 및 울산혁신도시 개발사업과의 상관관계 연구’에서 “침수피해의 직접적 원인은 설계빈도를 초과하는 기록적인 호우의 발생이며, 혁신도시 개발에 따른 홍수량 증가는 없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한마디로 천재지변에 의한 불가항력적 상황으로 LH의 잘못은 없었다는 것이다.

울산 태화·우정·유곡동 재난대책위원회는 즉각 “연구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LH를 상대로 지난한 싸움을 예고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결론을 정해놓고 내용을 끼워 맞춘 연구에 불과해 LH와 방재학회의 유착관계가 의심될 정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예견된 반발로, 피해주민들은 “물흐름을 무시한 LH의 혁신도시개발이 화를 키운 명백한 인재”라고 확신하고 있다. LH가 함월산 중턱을 깎아 혁신도시를 조성하면서 우수저류조(빗물저장소)를 부실하게 조성하는 등 재해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아 침수피해를 키웠다고 믿고 있다. 다른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LH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이 깔려 있다. 혁신도시개발과정에서 불거진 끊임없는 부실시공 논란과 어설픈 대처로 시민 신뢰를 잃은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태풍피해 이후 원인규명을 위해 주민들이 혁신도시 설계용역내용 등의 정보공개를 요구했으나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LH울산혁신도시사업단이 의혹의 대상이 된 것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울산중구주민회는 혁신도시 개발사업 설계용역 내용 공개, 혁신도시 토지형질변경 과정과 도시개발 자연환경평가 자료 공개, 유수량의 변화안전장치 메뉴얼과 수원지 일대 현상변경 메뉴얼 공개 등을 요구해 놓고 있다. “혁신도시 개발사업 정보공개는 개인의 정보가 아닌 120만 시민의 공적안전 자료로, 어떠한 이유로도 거부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과 함께다. 그렇지만 LH는 묵묵부답이다. 지금이라도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 차바로 인한 수재가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는지, 인재(人災)라면 어느 주체에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 밝힐 객관적·과학적 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분란을 잠재우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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