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로마 국립현대미술관(MAXXI)

▲ 8년 전 개관한 이탈리아 로마 국립현대미술관(MAXXI). 이 곳에는 전시품만 아니라 실내외 건축 디자인 자체를 감상하러 오는 사람이 많다. 지난해 타계한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곳으로 독특한 공간분할과 동선, 공중부양된 계단 등으로 눈길을 끈다.

8년전 새로운 미래 지향하는 미술관 개관
MAXXI, 21세기 예술의 국립미술관 의미
모든공간 구분돼 있으면서도 개방된 구조
비전 ‘혁신-다문화-융복합’ 공간속 표출
서울 DDP 디자인했던 자하 하디드 작품
하얀 벽·검은색 계단·입체적인 공간 눈길

‘일생에 한번은 이탈리아를 만나라’고 했다. 유럽 여행의 종결판이라 할 정도로 문화와 예술의 완결체를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로마는 좀더 특별하다. 3000년 간 면면히 이어져 온 서양문명사의 집합소이면서도 현재까지 그 흔적을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로마는 지금의 로마 중심부에서 시작된 작은 도시국가였다. 차츰 세력을 넓히며 주변 국가들을 정복해 나갔는데 서쪽으로는 지금의 영국, 동쪽으로는 터키를 넘어 중동,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사하라, 북쪽으로는 북유럽 대부분을 섭렵하며 대제국을 건설했다.

 

당시 최고의 문명지대인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이집트와 페르시아는 물론 지중해 연안의 모든 지역을 흡수해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로마와 같은 문화도시는 머무르지않고 좋은 것을 받아들여 융합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를 세상밖으로 전파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대는 달라졌으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로마의 도시 성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도시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인 로마는 자신들이 이룩한 과거의 영화에만 함몰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는 미술관이 최근 개관했다. 불과 8년 전 일이다.

 

수 천년의 기운이 응집한 고대 도시 심장부에 전혀 다른 분위기의 낯선 공간이 제대로 똬리를 틀고 앉은 것이다. 현대미술과 미래건축을 위한 이탈리아의 국립미술관, ‘MAXXI’(맥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식 기관명인 ‘MAXXI’는 이탈리아 말로 ‘Museo nazionale delle arti del XXI secolo’의 줄임말이다. 우리 말로 풀어 쓰면 ‘21세기 예술을 위한 국립 미술관’ 정도로 해석된다. ‘MAXXI’는 2010년 문을 열었으나 국내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관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이름이 혼용 돼 사용된다. 글자 그대로 ‘맥시’라고 하거나 ‘이탈리아 국립현대미술관’ ‘로마 21세기 미술관’ ‘로마 국립현대미술관’ 등으로 불린다.

1년 전 그 곳을 방문했을 때의 첫 인상은 ‘낯섦’ 그 자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대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에 이어 1세기에 지어진 뒤 무려 2000년의 세월을 버텨낸 ‘판테온’ 신전, 엄청난 중압감의 교황청 ‘바티칸 미술관’을 두루 살펴 본 직후였다.

▲ 로마 국립현대미술관의 안

로마의 유적지는 대부분 화려하거나, 거대하다. 게다가 역사의 현장을 지켜 본 만큼 어느 건물에나 기세등등한 위용이 서려있다. 그에 상응하는 기품의 향취 또한 짙고 깊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 귀퉁이는 오랜 풍상에 닳고 닳아 사람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느닷없이 도착한 로마 국립현대미술관(MAXXI)은 조금 전 둘러본 로마의 이미지와 사뭇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외벽은 우윳빛으로 환했다. 건물의 윤곽은 완만한 곡선으로 이뤄져 어느 한 쪽 무너져 내린 곳 없이 매끄럽고 풍성했다.

▲ 로마 국립현대미술관의 밖.

관광지가 아니다보니 상대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는 한숨을 돌리게 해 줬다. 존재 자체 만으로 가치를 드러내는 고대의 유적과 달리 미술관은 창고나 아파트 등 주변과의 어울림을 고려한 듯 일상공간처럼 편안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것도 잠시. 건물 속으로 들어가자 일순간의 평온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로마 국립현대미술관(MAXXI)은 미술품 전시공간 일 뿐만 아니라 건축을 비롯해 디자인·패션·영화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미술관의 고정된 역할을 뛰어 넘는 듯 했다.

▲ 본관 건너편의 오래된 별도 건물. 어린이들과의 공동작업 결과물이 벽면에 전시돼 있다.

안과 밖의 확고한 경계선 없이 모든 공간이 구분 돼 있으면서도 또 어느 구석에서는 완전히 개방된 듯 뚫려 있는 기막힌 구조로 돼 있었다. 혁신(Innovation), 다문화(Multiculturalism), 융복합(Interdisciplinary)이라는 미술관의 3가지 비전을 공간 속에 표출한 것 같았다. 벽들은 기존 건물 사이를 자유롭게 흘러가다 모이고, 뒤틀리고, 꺾어지기를 반복했다. 평면적이거나 수직의 연결 통로는 찾아볼 수 없었고 계단 또한 공간 속에 지그재그식으로 걸쳐져 있었다.

한편으론 명확한 동선 따라 물흐르듯 이동하는 로마의 다른 고대 유적지와 달리 어느 때는 어디로 향해야 할 지 난감할 정도로 상하좌우 모든 방향이 탁 트여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정형화 된 미(美)의 세계를 음미하는 미술관이 아니라 작가적 관점을 부각시킨 현대미술을 보여주는 곳이다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전시품이 던지는 질문 앞에서 그에 상응하는 나름의 피드백을 찾아내느라 몸과 정신이 피로할 정도였다.

▲ 고대 로마 시대에 원로원과 신전, 상점 등이 모여 있던 로마의 중심지, 포룸 로마눔.

이에 대해 어떤 관람객은 미술관 내부를 걸으며 끊임없이 변하는 풍경을 대할 수 있고 기대하지 않았던 다양한 공간 체험이 좋았다고 털어놨다. 개인적으로 건물 내 여러 개의 전시장 중 3층 꼭대기의 갤러리가 특히 그랬다. 전시장 바닥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출입문에서 반대편 벽면까지 가려면 나즈막한 언덕을 올라가는 기분이 들게했다. 잠시후 맞닥뜨린 벽면은 거대한 유리벽. 유리 벽면 너머로 미술관 주변의 아파트와 가로수 등 로마 시민들의 일상공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어느 순간 건축물 자체가 또하나의 작품처럼 다가왔다. 전시품을 압도하는 실내외 건축 디자인의 아우라가 상당했다. 곡선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내부는 복잡한 동선 때문에 방문객이 다소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전체적인 조화 속에 시선을 끌만한 요소가 구석구석 많았다. 하얀 벽과 기둥, 검은색 계단, 천장에 걸려 있는 가늘고 길쭉한 빨간색 봉이 미래를 겨냥한 색다른 디자인으로 다가왔다. 검은색 계단을 올라가서 아래쪽 로비를 내려다보면 로비에서 올려다 볼 때와는 180도 달라진 실내 전경이 나타난다.

▲ 홍영진 문화부장

낯섦 가운데서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점이 느껴지던 공간의 비밀은 어리석게도 공간을 다 둘러본 이후에 알게됐다. 로마 국립현대미술관(MAXXI)은 서울 한복판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디자인 해 국내에 찬반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6)의 작품이었다. 이라크계 영국인인 하디드는 지난 해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는데 국내 언론에서도 대서특필됐다.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 금메달을 두 번이나 차지했고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도 받았다. 그의 건축 디자인은 분열된 기하학적 구조와 다면적 관점과 함께 곡선 형태가 두드러져 미래지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들이 찬사를 보냈던 건 아니었다.

로마 국립현대미술관(MAXXI) 건립은 1998년 시작 돼 10여년 동안 이어졌다. 지금은 물거품이 됐지만, 당시 로마 시장이 2020년 올림픽 유치 신청에 앞서 도시현대화를 위해 추진한 것이다. 첫 출발이 어찌됐든 미술관 개관 이후에는 고대 도시 로마에 새로운 상징이자 창조적 엔진으로 작용해 과거의 영광을 다시 이끌어 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홍영진 문화부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