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취재차 들렀던 이탈리아
암각화에 대한 지역민의 사랑 인상적
반구대 암각화 보존 시민 모두 나서야

▲ 홍영진 문화부장

1년 전이다.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등 대곡천 반구대암각화의 세계유산등재를 앞당겨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탈리아로 해외취재를 다녀왔다. 목적지는 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디아주(州) 발 카모니카 암각화(Rock Drawings in Valcamonica). 이탈리아는 전세계 국가 중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이고, 그 중 발 카모니카 암각화는 이탈리아의 제1호 세계문화유산(1979년 등재)이다.

80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발 카모니카 암각화는 70여 ㎞에 이르는 계곡을 따라 38개 마을에 걸쳐져 있다. 총 2400여 면에 바위그림 흔적이 남아있다. 그 숫자가 무려 14만 점 이상이다. 선사시대 뿐 아니라 로마, 중세, 근대에 새겨진 암각화가 공존한다. 단순한 동물 문양은 기본이다. 제의를 위한 기하학 무늬나 풍요를 상징하는 여성의 모습도 나온다. 사냥활동을 묘사한 그림도 있다. 더 나아가 수렵채집 단계에서 농경사회 정착단계로 넘어가는 과정도 볼 수 있다. 사육한 동물로 밭을 갈고, 곡물을 거두는 장면까지 확인된다. 시대가 더 흘러 철기시대 고상 가옥과 전투 장면에다 일정 구역의 지형물을 기록한 초기 단계의 지도(추정)까지 확인된다.

우리의 대곡천은 4㎞ 남짓.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그림의 갯수는 학계보고 50주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학자마다 다른 결과보고서를 내고 있다. 이탈리아 취재 현장에서 우리의 암각화와 그들의 암각화를 견주어 보며 복잡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과연 우리가 반구대암각화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듣고 싶은 대답을 쉽게 내놓을 수 없었다. 희망을 품고 떠났던 벤치마킹 현장에서 자신감은 커녕 오히려 의구심과 자괴감만 키운 꼴이 됐으니, 참으로 답답했다.

그 날의 착찹함은 사실 두 지역의 유적을 단순비교한 결과치만으로 생겨난 건 아니다. 암각화 지대의 면적이나 개별 바위그림 갯수의 차이도 차이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들의 암각화 사랑이 어린이와 어른 등 마을주민 대다수에게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정상 모든 마을을 둘러보지 못했으나, 각 마을에는 바위그림을 관리보존하는 자율사무소가 운영된다고 했다. 암각화를 모티브로 한 공공시설물은 기본이고 마을 어귀부터 학교, 도로, 개인주택 정원의 벤치에 이르기까지 바위그림에서 디자인을 차용한 사례는 미처 손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들어가는 카페나 식당마다 ‘한 집 한 그림 걸기’ 캠페인이라도 진행된 듯 주민들 스스로 제작한 축소판 바위그림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울산에서 열린 반구대암각화 국제학술대회가 20~21일 이틀간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10개국에서 건너 온 고고학, 생물학, 역사학자들이 울산 도심 한 곳에 모여 반구대 암각화를 포함해 전 세계의 고래바위그림에 대해 이처럼 대규모로 토론회를 진행한 건 처음이다. 학자들은 앞으로도 이같은 교류의 장을 열어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 학계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토론회 청중들은 세계 곳곳 전 대륙에 걸쳐 고래바위그림이 그토록 많다는데 놀랐고, 실증적 접근방식의 국내 연구진과 신화적 혹은 미시적 관점에서 암각화를 해석하는 서양학자 간의 견해차를 흥미롭게 경청했다.

울산시가 제안한 반구대 암각화의 생태제방 보존안을 한차례 보류했던 문화재청(문화재위원회)이 오는 28일께 현장조사를 벌인다고 한다. 학술대회 장소가 대곡천 구석의 암각화박물관에서 울산시내 한복판 호텔로 옮겨진 건 답보 상태의 보존책 논의와 제자리걸음의 세계유산등재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절실함의 발로가 아닌가 한다. 국제학술대회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도록 암각화 보존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이 뒷심을 발휘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홍영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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