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안보테마공원

▲ 울산대공원 내 현충탑.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어린이들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현충탑 1층에는 위패실이 있고, 지하에는 호국관이 있다. 호국관 입구통로와 출구통로에는 울산의 옛 모습과 오늘날 울산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전시 돼 있다.

울산대공원 안에 안보테마공원
참전 기념탑·명각비 등 세워져
호국영령 기리는 현충탑엔
1층 위패실 지하 호국관 있어
전쟁 현장 사진·군수품 등 전시
전시품 보며 뼈아픈 희생 되새겨
현충탑 옆 무기전시장에는
2006년 공군 에어쇼 중 산화한
김도현 소령이 몰던 A-37B 공격기도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진정한 인생을 깨닫게 될까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이 바다 위를 날아봐야

벽사장에 편히 쉴 수 있을까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밥 딜런 ‘Blowing in the wind’ 중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모두가 잠든 사이 ‘폭풍’이라는 군사작전 명령에 따라 인민군 포병대는 38도선 전역에서 기습 남침을 감행해왔다. 뒤이은 3년간의 전쟁은 세계에서 가장 격렬하고 처절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국제전으로 확산되었으며 아직 끝나지 않은 채 푸르른 녹음 속에 또다시 6월은 찾아왔다.

국내최대의 도심공원인 울산대공원 안에 또 하나의 공원 안보테마공원이 있다. 6·25한국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그곳으로 바람은 불었다.

옥동 정문에서 시작해 호수 오른편으로 걸어가니 2002년 SK주식회사에서 세운 대공원 준공비가 나오고 조금 더 가니 대공원의 상징과도 같은 풍차가 나왔다. 그렇게 10분쯤 걸었을까 현충탑이 보이고 바람결에 나부끼는 태극기도 보였다.

산책 나온 가족들과 데이트하는 연인들, 자전거 타는 아이들로 대공원은 활기가 넘쳤지만 이곳에는 침묵이 흐르고 있다. 가지런히 심어져있는 느티나무를 따라 입구에 들어서니 세 개의 상징물과 명각비, 참전 기념탑이 있다. 두 손으로 지구를 받치고 있는 모양으로 전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는 조형물과 월남참전 기념군상과 6·25참전기념 군상, 울산지역 6·25 전쟁과 월남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높이 17m의 참전 기념탑이 그것이다. 명각비에는 울산지역 6·25 참전 용사 5832명, 월남참전용사 4403명, 재일 학도의용군 1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명각비에 새겨지지 않은 사람들까지 감안하면 울산의 모든 젊은이들이 전쟁에 참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투물자, 생필품, 보급품을 운반하거나 진지공사, 부상자 후송, 도로와 교량의 건설, 보수 등 다양한 임무가 주어져 전투에 투입된 민간인들이 있었으니 그들을 한국노무단(Korean Service Corps), KSC라고 불렀다. 원칙상 35~45세 남성을 모집하는 것으로 정해졌지만, 이들만으로 물자 수송 작전을 펼치기엔 역부족이었기에 10대 소년에서부터 노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민간인들이 노무단으로 선발되었다고 한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산악지역에 지게로 탄약과 식량을 옮기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알파벳‘ A’를 닮았다는 뜻의 ‘A Frame Army’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여기에 학도의용군에 참여한 어린 여학생들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모든 국민이, 발 딛고 숨 쉬는 곳이 전쟁터 그 자체였던 것이다.

▲ 울산대공원 현충탑 바로 옆 무기 전시장에는 F-4D(팬텀전투기), M-48A2(전차), LVT-P7A1(수륙 양용 차), A-37B(드래곤 플라이 공격기) 등을 볼 수 있다.

침묵을 깨는 재잘거림이 있어 돌아보니 네다섯 살 남짓한 어린이집 아이들이었다. 무기전시장에 전시된 전시물들을 그저 신기한 장난감처럼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엔 해맑은 웃음뿐 전쟁의 그림자는 없다. 아이들이 있는 무기전시장에는 F-4D(팬텀전투기), M-48A2(전차), LVT-P7A1(수륙 양용 차), A-37B(드래곤 플라이 공격기)등 6종의 무기가 전시되어있다.

2006년 5월5일 어린이날 행사 때 경기도 수원비행장에서 공군에어쇼를 선보이던 중 기체고장으로 비행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자 조종사는 비상탈출을 포기하고 추락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당시 조종사였던 김도현 소령은 34세의 나이로 슬하에 네 살과 세 살짜리 아들이 있었지만 1300여명의 관람객이 있는 관람석으로 추락하는 비행기의 조종간을 끝까지 놓지 않고 방향을 바꾸어 인명피해 없이 순직했다.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투철한 군인정신을 마지막 순간까지 발휘했던 것이다. 고인이 사고 당시 조종했던 기종과 같은 A-37B 공격기는 지난 2009년부터 여기 현충탑 옆에 전시중이다.

현충탑은 6·25전쟁에서 조국수호를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뜻을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울산지역 출신 영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탑의 높이는 33m로 탑신 전체는 선열들의 충, 의, 위, 훈을 기리기 위해 엄숙하고 경건함을 나타내는 형상으로 구상되었다고 한다.

현충탑 1층에는 위패실이 있고, 지하에는 호국관이 있으며 호국관 입구통로와 출구통로에는 울산의 옛 모습과 오늘날 울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둥근 구조의 호국관을 빙 둘러서 6·25 한국전쟁발발부터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 중공군의 개입과 재반격, 전선의 교착과 휴전 순서로 전시되어 있고 패널 사이사이 당시 사용했던 무기, 전시 상황을 알려주는 현장사진, 군수품등이 전시되어 있다. 인민군복과 국군복을 입고 있는 마네킹 앞을 지날 때 문득 전쟁의 원인이 저 옷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 옷만 벗으면 한솥밥을 먹는 형제요 함께 놀던 동무인데 저 옷만 입으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사이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하지만 저 옷을 입고 싶어 스스로 입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이고 무엇을 위한 희생인가?

그들의 희생을 훈장이라는 이름으로밖에 보답할 수 없는 탓인지 호국관 중앙에 훈장에 관한 내용이 적혀져 있다. 나라마다 국가의 공로자를 포상하기 위한 훈장을 제정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전투에 참가하여 무공을 세운 군인에게만 주는 무공훈장을 따로 제정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무공훈장을 별도로 제정하고 있지 않는 반면 미국의 훈장은 전부가 무공훈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대한제국시대에 장용장이라는 무공훈장이 있었는데, 현재는 등급에 따라 태극, 을지, 충무, 화랑, 인현 무공훈장 등 다섯 종류가 있다.

▲ 장현 울산시문화관광해설사

전시실을 한 바퀴 돌아 출구로 나오니 지금 울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을 뿐 처음 그 자리다. 시간이 흘렀을 뿐 분단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음을 일깨워 주기위한 것인 듯하다. 사진 속 지금을 보며 6·25전쟁의 잿더미에서 일궈낸 결과물이기에 뿌듯한 마음이 드는 한편 앞서간 이들의 희생위에 얻은 풍요로움이라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마침 현충탑 쪽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느티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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