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대공원은 있는 그대로도 충분
억지성 볼거리보다 자연과 교감 살려야
부조화의 채움보다는 비움의 미학을

▲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얼마 전이다. 태화강대공원에 갔다가 난데 없는 우체통을 발견했다. 간절곶에 있던 우체통을 옮겨왔나? 아니었다. ‘태화강대공원 소망우체국’이라고 적혀 있었다. 생뚱맞았다. 그런데 그건 약과였다. 누군가 페이스북에 ‘죽순조형물’이라며 사진을 올렸다. 야간조명까지 갖추었다. 설마 태화강대공원…? 죽순조형물이 자리한 곳은 우체통에서 가까웠다. 2개의 조형물은 우람했다. 눈대중으로 각각 10m, 7m가량 돼 보였다. 시멘트 재질에 페인트를 칠한 것 같았다. 다행이랄까. 태화강대공원의 규모가 워낙 큰 덕인지 예상보다 눈에 띄지는 않았다.

울산에서 가장 난삽하게 꾸며진 대표적인 장소로 간절곶이 꼽힌다. 온갖 조형물들이 마치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많다. 대형 우체통, 거북과 용으로 장식된 새천년 돌비석, 풍차, 박제상 부인과 두딸의 모녀상, 반구대암각화 기념비, 시계탑, 울산큰애기노래비… 그밖에도 조잡하기 이를데 없는 시설물과 건물들, 번쩍이는 야간조명까지. 한마디로 어지럽다. 일출의 비장함과 지명에서 느껴지는 간절함을 축약해주는 조형물이나 건축물 하나로 충분할 것을….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온다(艮絶旭肇早半島)’는 간절곶 특유의 상징성과 장소성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등대 외 아무 것도 없던,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무언가 간절했던 그 옛날의 간절곶으로 되돌리고 싶을 만큼 ‘간절하게 안타까운 곳’이 돼 버렸다.

태양이 잠시 숨을 죽인 한낮의 태화강대공원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강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대숲, 공원 내부로 흐르는 실개천, 갈대와 부들, 징검돌, 수백년 자리를 지켜온 키 큰 버드나무…. 자연스러움은 태화강대공원의 가장 큰 매력이다.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을 도심 한가운데서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또 하나의 매력을 덧붙이자면 그것은 바람이다. 대숲은 물론이고 갈대와 부들을 흔드는 바람, 그 바람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오롯이 벅차게 느낄 수 있는 드문 공간이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이 무척 방해가 되긴 하지만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 벌레소리도 신비롭다.

가족 또는 친구끼리 다인승자전거 또는 왕발통을 타면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한가롭게 산책하는 사람들도 행복해보였다. 둑 가까이 잔디밭에는 작은 텐트도 여럿 있었다.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흔한 풍경이 됐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드넓게 펼쳐진 수변공간, 그것으로 충분했다. 애초 자연형 공원의 목적이 그러했듯 쓸모없음의 쓸모있음(無用之用)이다.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김수빈, 김슬기, 이진원, 정현진 학생이 울산대공원 이용자 100명을 대상으로 이용·만족도 조사를 했다. 학교 과제를 위해 직접 발로 뛴 것이다. 그 결과에서 울산대공원 이용자들의 76%가 산책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6%의 이용자들까지 합치면 82%가 공간 그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습, 교육, 놀이기구, 전시장, 취미활동 등의 시설은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호랑이발테라스, 산림놀이시설, 만국의 숲, 숲속공작실, 암석원, 작물원, 환경테마공원 등도 84~90%가 이용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나비식물원이나 환경관, 동물원 등도 이용경험이 없거나(60~68%) 겨우 한두번 이용하는데(20~24%) 그쳤다. 사람들이 자연형 공원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억지성 볼거리가 아니라 자연과의 교감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조사결과다.

우리의 전통한옥은 앞마당을 텅 비운다. 먼 산을 빌려 풍경을 채우고(借景) 시조 한자락으로(吟風弄月) 품격을 높였던 우리 선조들이다. 비움의 미학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 추세다. 유치한 채움으로 태화강대공원이, 울산대공원이 간절곶처럼 될까 두렵다.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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