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대화상의 시에 비유된 모내기처럼
세상사는 뒷걸음이 필요할 때도 있어
먼저 물러섬을 통한 소통이 나아감이다

▲ 성종형 GoldenWay Group CEO

사람 인(人)은 한 사람이 손을 펴고 서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라 한다. 두 사람이 기대어 살아가는 최소단위 조직의 근원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상대가 있기에 인간관계라는 상승된 말이 존재하고 개인에서 우리, 사회, 국가, 인류로 생각의 폭이 가일층 진화해 왔을 것이다.

후배의 소개로 활의 묘미에 빠진 적이 있다. ‘활’, 밀고 당김 속에 균형이, 당김의 작용에 나아감의 반작용이, 시위에 올려 진 화살이 찰나의 의식을 떠남에 온 생각이 함께 날아가 공(空)이 됨을, 결국에는 이미 시공을 가른 과녁의 색깔에 미련 가득 담고 다시 일발 장전하는 속세의 자아도 보았다.

새 정부 출범에 따라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가 시작되었다. 후보자들의 자질 검증은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세금탈루 등 비슷한 문제로 여·야가 격론을 벌이며 국가경영을 위한 재목들의 옥석을 고르는 청문의 화살이 오간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미래를 위한 현(弦)의 당김이리라.

우리네 삶은 결코 단조롭지 않다. 풍부한 이야깃거리와 다양한 소재가 여기저기에 늘려 있으며 이러한 다양성은 소통과 공감에 장애를 야기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사회의 주요한 자산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한국사회의 진정한 진보(進步)는 ‘다양성 속에 소통이 깃들 때’ 찾아올 것이다.

행각승으로 늘 포대 하나를 메고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 머리는 둥글고 배는 불룩 튀어나온 포대(布袋)화상으로 불렸던 중국 후량시대 계차스님의 ‘삽앙시’를 보자.

“푸른 모 손에 들고 논에 가득 심다가 고개 숙이니 문득 물속에 하늘 보이네. 육근(六根:눈, 귀, 코, 혀, 몸, 느낌)이 맑고 깨끗하니 비로소 도를 이루고 뒷걸음질이 본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네.”

농사를 비유의 대상으로 사람의 도리에까지 내용을 확대한 큰 가르침이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이는 건 당연한 이치이고 고개를 숙인다고 하늘을 볼 수 없는 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 선의를 가지고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육근을 맑게 유지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나아갈 때와 뒤로 물러설 때를 알고 양보할 줄 알면 가능하다. 모내기 할 때는 사람이 뒤로 물러나면서 마지막에 물러난 최후의 한 줄까지 모를 심어야 끝이 난다. ‘뒷걸음질이 본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선의를 가진 인생은 속세에서 퇴보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진보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사흘을 굶은 한 노인이 빵을 훔쳐 먹다 잡혀 재판을 받게 되었다. “빵을 훔친 절도행위는 벌금 10달러에 해당됩니다”는 판결을 내린 판사는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더니 “그동안 내가 좋은 음식을 많이 먹은 죄에 대한 나 스스로의 벌금”이라며 자신이 내겠다고 하면서 방청객에게도 좋은 음식을 드신 분은 기부해 달라 호소해 1920년대 당시 돈으로 47달러를 모금했다. 노인의 가슴에 상처를 주지 않는 ‘좋은 음식을 많이 먹은 죄’라는 언어로 방청석의 공감을 얻어낸 판사의 이름은 라과디아(Fiorello H LaGuardia)이며 훗날 뉴욕시장을 3번이나 연임하게 된다.

한 걸음만 양보하면 하늘이 보일 것이다. 세상일은 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다만 한발 물러서면 대개는 쉬워진다. 먼저 ‘물러섬’을 통한 소통이 곧 ‘나아감’이 되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좋아함’을 받으려면 교양수준을 높이고 인격을 연마하며 높은 도덕성과 가치관으로 인간적 매력을 높여야 한다. 그게 선(禪)이요, 좋은 음식을 많이 먹은 지도자들의 몫이다. 고집스러운 태도로 삶을 대하지 말자.

성종형 GoldenWay Group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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