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 번도 자신의 상처를 시로 쓰지 않았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의 가족을 노래하지 않았다
그는 서정시를 사랑하고, 초겨울의
시리도록 신선한 배추밭 언저리 같은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는 한 번도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았다
고향을 회상하고, 추억을 데려오고
화려한 언어의 수사로 문장을 직조하고
은유의 포장지를 겹겹이 씌우고
서정시를 발표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사생활을 노래하지 않았다
나는 그 시인의 시를 믿을 수 없다
자벌레가 초록의 벼랑길을 가는 것을
오감이 저리도록 지켜볼 뿐

▲ 엄계옥 시인

글에도 표정이 있다. 희로애락이 담기지 않은 글은 무미건조하다. 문장을 기예로 삼는 사람일수록 쓰지 않으면 못 배길 때 써야한다. 정직하게. 그런 글은 재밌고 멋있고 맛있다.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고 했다. 글은 곧 그 사람이며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 글에는 그 사람의 말투, 행동이 들어 있다. 거친 운명을 불쏘시개 삼아 고군분투한 흔적이 보일 때도 있다. 그럴 때 고개가 끄덕여 진다. 사무사(思無邪)라고 했다. 생각에 삿 댐이 없다는 말은 글이 솔직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신뢰가 가지 않듯이 진정성이 빠진 글에는 감동이 없다. 시인은 벼랑을 가는 자벌레같은 삶을 문장화시키지 않는 시를 지적하고 있다. 오성(悟性)이 열리는 글, 자기만의 개성이 담긴 글, 그런 글이 진짜 문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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