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 마당의 양철쓰리기통에 불을 놓고
불태우는 할머니의 분홍색 외투
우르르 솟구치는 불씨들 공중에서 탁탁 터지는 소리
그 소리 따라 올려다본 하늘 저기
손가락에 반쯤 잡흰 단추 같은 달
그러나 하늘 가득 채워지고 있는 검은색,
가만히 올려다보는데 일순간

-중략-

검은 하늘 가득 분홍색을 죽죽 칠해나간다
감싼 외투에 깃들어 있는 석유 냄새처럼
비명의 냄새를 풍기는 흐느낌
확 질러버리려는 찰나! 나의 몸속으로
다시 돌아와 잠잠하게 잠기는 분홍색 흐느낌
분홍색 외투의 마지막 한 점 분홍이 타들어가고 있다

▲ 엄계옥 시인

슬픈 시를 읽을 때면 왜 세상 엄마들은 감당하지도 못할 자식을 낳아서 시인이 되게 만드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라는 울타리가 없는 사람은 햇볕도 몸을 감싸는 따스한 빛이 아니라 살을 찌르는 창이 되고, 눈뭉치도 설렘이 아니라 주먹질이 된다. 시의 정황과 읽는 감정이 일치를 이룰 때 압축되어 있던 기억이 말을 걸어온다. 할머니 살아생전, 돌아가시면 따라서 죽겠다고 한 적이 있다. 이 시 또한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정리를 보여주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청명하다던 어린 시절을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와 보냈기에. 그 시간을 분홍으로 표현하는 시인은 절대로 이별이 슬프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행간마다 눈물이 그득 고이게 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눈을 젖게 만든다. 그게 ‘시인이라는 슬픈 천명’의 발화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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