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 소송에 휘말린 검정 마카크 원숭이의 '셀카'./위키피디아 캡처=연합뉴스

이빨을 드러낸 채 활짝 웃는 원숭이 셀카 사진의 저작권을 놓고 국제동물보호단체와 소송 중인 영국인 사진작가가 장기간의 법정 다툼으로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3일 보도했다.

지난 2015년 국제동물보호협회(PETA)로부터 제소당한 후 법정 분쟁 중인 영국인 사진작가 데이비드 슬레이터는 이날 가디언과의 통화에서 ”변호사 비용은 물론 딸아이에게 물려줄 사진 장비 하나 없다“며 생활고를 털어놨다.

프리랜서 사진작가들이 대체로 어렵지만 그가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부닥친 것은 행운인 줄 알았던 원숭이 사진으로 수년 전 뜻하지 않은 논쟁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슬레이터는 2011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에서 여러 날 검정 마카크 원숭이 무리를 쫓아다니며 사진을 촬영하던 중 원숭이 한 마리에게 카메라를 빼앗겼다.

이 원숭이는 슬레이터의 카메라로 수백장의 셀카 사진을 찍었으며 이렇게 찍은 사진 가운데 그 유명한 ‘웃는 원숭이’ 사진이 있었다.

이 사진이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해 유명해지면서 슬레이터는 인도네시아 여행 경비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만지기도 했다.

그러나 슬레이터가 2014년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와 IT 동향 블로그인 ‘테크더트’에 이 사진의 무단 도용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업체들이 슬레이터의 요구를 무시하고, 특히 위키피디아는 원숭이가 사진을 촬영한 만큼 슬레이터를 저작자로 볼 수 없다며 반격하고 나선 것이다.

한술 더 떠 PETA는 사진을 촬영한 원숭이가 ‘나루토’라는 이름이 있는 6살짜리 수컷 원숭이라며 나루토를 대신해 슬레이터를 상대로 미 법원에 저작권을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지난해 동물은 저작권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며 슬레이터의 손을 들어줬지만, PETA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12일 미 샌프란시스코에선 항소에 따른 심리가 열렸다.

이날 심리에선 PETA가 나루토를 대신해 소송을 제기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지, 나루토가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해 실제 피해가 발생하는지 등이 집중적으로 검토됐다.

슬레이터는 항공권을 살 돈이 없어 이 심리에 참석할 수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생활고에 내몰려 다른 직업을 물색 중이라며 “테니스 코치가 되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강아지 산책 도우미도 생각 중이다. 소득세를 낼 돈도 없다”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그는 “사진작가라면 누구나 이런 사진을 갖기를 꿈꾼다”며 “만약 사진을 사용할 때마다 사람들이 1파운드씩만 냈어도 현재 수중에 4000만 파운드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저작권을 둘러싼 소송이 길어지면서 그는 “심각하게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상황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저작권자임을 강조했다.

‘웃는 원숭이’ 사진은 우연히 얻은 결과물이 아니라, 사진 속 원숭이가 셀카를 찍도록 유도하기 위해 무수한 공을 들였다는 점에서다.

그는 “원숭이가 우연히 한 행동이 아니다. 많은 지식과 인내, 땀, 괴로움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슬레이터 변호인은 PETA가 내세운 나루토가 진짜 사진을 촬영한 원숭이가 맞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변호사는 “사진상으로 원숭이가 암컷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며 나이도 다르다”면서 “미국 사법체계에 황당함을 금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원숭이가 소송을 했는지도 중요한 문제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나마 사진이 유명해지면서 검정 마카크 원숭이가 멸종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슬레이터의 유일한 위안거리다.

슬레이터는 “이 사진이 원숭이 종족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 원래 사진을 촬영한 목적도 그것이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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