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친구와 소원해지는 노년기
부부가 함께 여가·취미 활동하며
정서적 공감대 높이는 노력 필요

▲ 강혜경 경성대학교 가정학 교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불볕더위로 뜨거운 요즘, 노인복지관에서 70~80대 부부들을 대상으로 잉꼬 부부학교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경남 하동, 지리산 골짜기에 살고 있는 94세 할아버지와 93세 할머니의 일상을 담은 KBS 추석특집 ‘내 사랑, 내 곁에(2015)’ 다큐를 보여드렸다. 72년 부부의 인연으로 살아온 노부부의 삶속에서 잉꼬부부의 비법을 찾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큐 속 할머니는 “여지 것 함께 살아줘서 고마워” “한 날 한시에 가는 게 소원이라” “영감 없는 세상은 이세상이나 저세상이나 무서워” 사위 와서 닭 잡는 장면에서는 “영감, 안 아프게 해, 그런 것도 안 아파야지”라고 하신다. 할아버지는 주름진 늙은 아내에게 “시집올 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예뻐”라며 두꺼운 늙은 손으로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고, 매일 써오신 한줄 일기에 “내일은 할멈이랑 소풍가고 싶다”라고 쓰신다.

72년 함께 살아온 노부부 영상을 보며 “영감이 집안일을 다 하네, “할망이 애교가 있다.” 여기저기서 감탄을 내어놓으셨다. 그리고는 “예뻐” “고마워요”로 서로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표현하는 의사소통, “아파 못해주는 건 괜찮아” “영감이 최고라” 뒤바뀐 역할마저 수용하는 유연함, 닭에게 “꼬꼬닭아 고마워, 예쁜 우리 할멈 주게 또 낳아”라시던 생명에 대한 태도에 잉꼬부부의 비법이 있다고 하신다.

적어도 40년, 50년 이상의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부부들에게, 영상 속 대사 ‘영감, 나 예뻐? 고마워!’를 주고받게 했다. 마음은 있는데, 잘 안된다고 하시며 부끄러워하셨다. 그러면서 본인들의 삶을 회상하고 고백하셨다. “그때는 몰랐어. 부모님께 월급 다 갖다 드렸어. 6남매 동생들 키우고, 3남매 자녀를 키운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때는 몰랐어. 다 그랬어. 철나고 생각해 보니 참 고맙더라고, 그래서 요즘 우리 마누라한테 잘해.” “우리 집 사람은 샘이 많아. 옛날로 돌아갈 수 없는데, 자꾸 되 뇌이니 미안하긴 한데, 아쉽고 불편해” “애들이 떠나고 둘만 남아있으니, 아내가 아프면 반찬이라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애들은 멀리 있고 바쁘고 걱정돼. 그래서 요즘 내가 하나씩 배운다니깐.” “노년에 우리는 이제 돈도 자식도 필요 없고 마지막 사랑이야. 그래서 서로 잘해. 청소는 내가하고 밥은 마누라가 해. 가끔 설거지도 내가 해준다니깐.”

지금의 70~80대 부부는 우리사회에서 가족부양에 높은 비중을 둔 가족주의 이념이 팽배한 시대를 살았던 세대다. 부모자녀관계 중심으로 살았던 세대로, 부부중심의 가족주의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 실제 2016년 통계를 보면 황혼이혼(결혼지속기간 30년 이상) 비율이 신혼이혼(혼인지속기간 4년 이하)에 비해 높아졌고, 중노년기 부부를 대상으로 새로운 부부관계로 졸혼 등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잉꼬부부로 노년기를 살아가는 부부는 소수에 불가한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생애주기에서 자녀들이 독립해 나가고 친구들도 소원해지는 노년기로 접어들면 부부의 에너지가 가정 중심으로 역할 재조정되고, 친밀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대상으로 배우자가 부각된다고 한다. 결혼만족도 연구를 살펴보면 중년기는 자녀, 직업, 건강문제 등 역할의 복잡성으로 점진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노년기의 자녀출가 이후 생활이 더욱 단순해짐으로써 결혼만족도가 상승한다고 한다. 단 자녀양육으로 소원해졌던 부부관계를 여가나 취미활동을 통해 얼마만큼 재정립해 나가는지가 변수라고 한다. 성별 만족도에서 부인은 본인이 건강하다고 지각할수록, 남편의 정서적 지지가 많을수록 높고, 남편은 은퇴 이후 아내로 부터의 정서적 지지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밝혀졌다. 노년기 잉꼬부부로 살기 위해서는 부부간 정서적 지지와 역할 재정립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결과이다. 다음 주는 또 어떤 이야기로 만나 뵙게 될지 벌써 기대된다. 작열하게 뜨거운 여름, 한사람의 남자와 여자로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고 한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노부부, 그들에게서 서로를 바라보는 연민과 사랑을 배우고 있다.

강혜경 경성대학교 가정학 교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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