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이 함께 달린다
문장들 우르르 달려온다
푸시킨이 시를 쓰던 펜, 모두 일어나
고도로 가는 길인 듯, 신이 났구나
천 년 너머의 서사를 들려주려는가
산짐승처럼 팔딱거리는 수직의 숲을
나는 수도승이 되어 받아 적는다
이대로 시간을 거슬러 고도에 닿으면
오래된 수도원 가장 은밀한 곳에서 나는
열여섯 처녀인 나를 만나고 싶다

-중략-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그 문장에 기대고
그들, 또 한 생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가.
버스가 고도에 닿으면 나는 먼저
오래된 종탑으로 달려가야겠다.

▲ 엄계옥 시인

열여섯 무렵이었던가, 두메산골 골방에까지 푸시킨의 시가 걸려 있던 때가. ‘삶’이라는 시가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 까지 퍼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말자’던 메시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암울하던 날에 사람들은 ‘현재는 슬픈 것’이라는 위무에 기대었으리라. 그 푸시킨을 어른이 되어 만나러 가는 길, 고도로 가는 길이 얼마나 설레는지. 길가에 일렬로 늘어선 자작나무가 하얀 펜대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길 위에서 쏟아지는 문장을 받는다. 은유는 사물과의 합일일 때 경계가 허물린다. 어린 나와 큰 이모와 푸시킨이 그 길에서 조우한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