뵈는 듯 마는 듯한 설움 속에
잡힌 목숨이 아직 남아서
오늘도 괴로움을 참았다
작은 작은 것의 생명과 같이
잡힌 몸이거든
이 설움 이 아픔은 무엇이냐
금단의 여인과 사랑하시던
옛날의 왕자와 같이
유리관 속에 춤추면 살 줄 믿고
일하고 공부하고 사랑하면
재미나게 살 수 있다기에
미덥지 않는 세상에 살아왔었다
지금 이 뵈는 듯 마는 듯한 설움 속에
생장(生葬)되는 이 답답함을 어찌하랴
미련한 나! 미련한나!

▲ 엄계옥 시인

우리나라 최초로 포의 작품을 번역했고, 여성최초로 ‘생명과 과실’이라는 시집을 발간한 시인. 김억이 한국 최초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를 발표한지 불과 두 달 뒤의 일이었다니. 어떤 신여성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카프(kapf) 발행인 김기진으로 부터 공개적으로 부도덕한 여인이라는 비난을 받고, 소설가 김동인은 ‘김연실전’ 모델을 시인으로 하여 신여성을 비판했다.(공진호) 그도 모자라 유학시절 당한 치욕을 짝사랑이라 왜곡 보도 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니.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이 시의 정황이 포착 된다. 유리벽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외부와의 단절, 핍박, 마음이 답답하던 때 우연히 펼친 시였다. 천만갈래로 헝클린 마음을 쏟아낸 게 ‘유리관 속에’ 였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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