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그림 이상열

 

열두 가야의 국읍과 저잣거리에서는 ‘하령왕의 아이는 죽지 않았으며 중신의 아들과 바꿔치기 해 살아 있다’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고상지 도독과 박지 집사는 세작을 풀어 이런 소문의 진원지를 캐고 있으며 특히 박지는 후누와 수경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신라 달천에 숨겨둔 꺽감을 대가야의 국읍으로 데려오는 것은 아이를 잡아 바치는 것과 진배없었다.

하지만 수경의 닦달은 도를 넘었다.

“아이를 데려오세요. 아이가 보고 싶어 죽겠어요.”

“꺽감이 보기 싫어 죽겠다고 쫓아낼 때는 언제고, 위험한 때에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는 것은 또 무슨 말이오?”

“이미 인편으로 친정아버지께 서신을 보냈어요. 이제 우리 아이를 우리가 기르겠다고. 꺽감이라도 있어야 내가 살 것 같아요. 꺽감은 내 아이의 피 값으로 산 애잖아요. 여보, 훌륭하게 잘 키울 거니까 염려말고 데려와요.”

그래도 후누가 안된다고 못을 박자 만약 보름까지 아이를 데려오지 않으면 관에 가서 이실직고하고 자진할 거라며 금도를 넘는 말까지 쏟아냈다.

미인은 얼굴값을 한다지만 후누는 수경의 변덕과 비위를 맞추느라 심신이 피곤했다. 아이를 바꿔치기 한 뒤로 그 피로감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아이를 바꿔쳐 죽이게 한 것은 자신의 결정이었으니 수경에게 면목이 없고 미안했다. 아비의 심정도 죽고 싶은데 아이를 낳은 어미의 심정은 오죽할까.

후누가 수경에게 물었다.

“만약 아이를 데려오면 목숨 걸고 아이의 생명을 보전할 수 있겠소?”

“내 목숨과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아이를 보호하겠어요.”

“좋소. 어차피 장인어른께 서신까지 보낸 마당, 내가 달천으로 가겠소.”

후누는 울뫼 달천으로 말을 달렸다. 가는 도중 민생이 피폐하고 민심이 흉흉한 곳을 많이 보았다. 마을마다 가뭄이 들어 벼와 곡식이 말라죽어가고 있었고 어떤 마을은 역병이 돌아 사람이 뭇으로 죽어나갔다. 굶주린 사람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었고, 부랑자가 된 사람들은 비적이 되어 고샅과 고개에서 과객의 봇짐을 털었다.

▲ 그림 이상열

후누는 달천으로 가는 길에 민정을 살피며 탄식했다.

‘아, 바른 길 착한 길을 가는 것이 죄가 되는 세상이다. 가야의 하늘 아래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조차 부끄럽고 참혹한 일이다. 가야의 산하가 이 악몽을 지우고 부끄러운 몸을 털며 일어나는 날은 언제일까.’

가야의 남은 희망, 꺽감으로 향하는 후누의 마음과 말발굽 소리가 간절했다.

후누는 낙동강을 건너 울뫼 달천으로 갔다.

갓난 아기였던 꺽감은 늠름하고 준수한 아이로 자라 있었다. 후누는 꺽감 왕자에게 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일부러 냉정하게 말했다.

“우리 꺽감이 말썽 피우지 않고 잘 지냈지? 이제 고향으로 가서 아빠와 살자.”

우리말 어원연구 보름. 【S】bhram(브흐람), illusion(환상). bha(빛)+ram(환상) 보름달은 빛의 환상이란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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