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내원암

▲ 대운산자락에 내원암이 있고 암자와 더불어 흐르는 계곡은 울산12경에 오를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암자는 대운산의 꽃봉우리 모양을 이룬 다섯 봉우리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신라 중기 대원사를 창건한 고봉선사는 ‘영남제일의 명당’이라고 극찬했다.

신라중기 고봉선사가 창건한 대원사
동국여지승람에 오를 정도로 컸으나
정조10년에 폐사…빈대 전설만 구전

내원암 초입에는 대원사 옛터가 있고
일심 상징 일주문, 진리의 세계 안내

암자와 더불어 아름다운 자연과 계곡
울산12경 오를만큼 빼어난 경관 자랑
더위 가리는 녹음아래 번뇌 식혀보길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너무나 단순한 진리이자 이치인 성철스님의 이 법어는 또한 너무나 깊어 짧은 생애를 통해 깨닫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여겨진다. 어리석은 중생이기에 이치는 고사하고 더위라는 민생고를 해결하려 물과 산이 있는 곳으로 가보려 한다.

백두대간이 남으로 남으로 힘차게 달리다가 한숨 쉬며 명산을 이룬 대운산(大雲山, 742m) 자락에 내원암이 있고 암자와 더불어 흐르는 계곡은 울산12경에 오를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 아름다우며 물이 맑고 깨끗해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계곡으로 몰려든다.

▲ 내원암 선녀폭포.

내원암을 가기 위해 공업탑에서 두왕로, 두왕사거리를 지나 남창로로 접어들었다. 같은 공간 속에 두 세계가 존재하듯 두 그림이 기차레일처럼 평행선을 그리며 펼쳐진다. 2차선도로와 동해남부선 기찻길 밖에 없어 출퇴근 시간이면 불편을 겪었던 이 길은 4차선도로로 확장되었으며 그 옆으로 부산 울산 간 고속도로도 시원스레 놓여있다. 이렇게 과거와의 동행 속에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논 한가운데 있어 주위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함 때문에 더 눈길을 끄는 보리밥레스토랑이 그 모습 그대로이다.

30분쯤 달려 대운의 위쪽마을이란 의미를 가진 상대마을로 들어갔다.

오른쪽으로 운화리 성지[雲化里城址]란 표지판이 보이는데 대운산의 한 봉우리와 그 아래 능선과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길이 약 1㎞ 높이 100~220㎝의 포곡식 산성으로 2000년 11월 9일 울산광역시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되었다. 경사가 급한 서북쪽은 훼손이 심하고 완만한 남동쪽은 돌이 많이 남아 있는 편이며 온양 일대와 서생포 입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어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임을 알 수 있다.

▲ 대운산 내원암 계곡.

산성 아래에는 삼국시대 유적인 운화리 고분군과 삼광리 고분군이 있고 성 내에서 발견되는 토기 조각과 대운산 성터 아래에 펼쳐져 있는 운화리 고분군을 감안한다면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사용된 산성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표지판을 지나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드러내며 길가에 즐비하게 들어선 음식점들, 이어 제3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내원암으로 발길을 옮겼다. 내원암을 오르는 약 10㎞에 달하는 등산코스는 경사가 완만해 별다른 트레킹 장비 없이도 가볍게 오를 수 있다. 아침에 서둘러 출발했지만 무더운 날씨는 짓궂은 개구쟁이처럼 쫓아와 등을 흠뻑 젖게 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등산로에 있는 단풍나무, 서어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하늘을 뒤덮어 만들어 준 그늘 덕에 삼림욕을 하듯 편안한 느낌으로 즐길 수 있었다. 온 산을 가득 메우는 숲내음과 여름을 온 몸으로 표현하는 풀벌레소리, 무엇이 그리도 간절한지 정성스레 쌓아올린 돌탑들 내원암으로 가는 내내 자연은 우리에게 벗이 되어 주었다.

내원암 초입에는 내원암의 본사였던 대원사(大原寺)의 옛터가 있고, 500여년의 세월을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 팽나무 고목은 코끼리를 닮았다하여 보는 이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신라 중기 고봉(高峰)선사가 창건한 대원사는 동국여지승람에 오를 정도로 크고 이름난 절이었으나 정조 10년(1786)에 폐사되고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을 뿐 그 외 사적(寺蹟)은 찾아 볼 수 없다. 단지 절터에 남아있던 부도를 통해 현하당(縣河堂)이란 스님이 대원사에 계셨던 것으로 짐작되며 절에 관한 사연이 전설로 구전되어 오고 있다.

신도들이 많이 찾아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주지가 어느 날 절을 찾은 한 도사에게 사람들이 하도 많이 와 귀찮으니 사람들이 적게 오게 할 수 없을까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게 된 도사는 “마을로 내려가는 산모퉁이를 헐어 길을 열게 되면 소원대로 될 것이요”하고 절을 떠나 버렸다.

도사의 이야기를 듣게 된 주지는 산모퉁이를 헐어 길을 열게 되었다. 그런데 웬일인 지 작업 중에 석불 한 구가 솟아 나왔는데 이 부처는 그만 삽과 괭이에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에 절에는 갑작스런 빈대가 들끓어 많은 빈대 속에서 사람들은 견뎌 낼 수가 없어 쓰레받기에 쓸어 담아 웅덩이에 버렸는데 이 곳을 빈대소라고 한다.

▲ 장현 울산시문화관광해설사

암자 입구에 보라색 도라지꽃이랑 수국 그 사이로 새롭게 단장한 일주문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하나의 기둥인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으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일주문을 통해 보이는 암자는 대운산의 꽃봉우리 모양을 이룬 다섯 봉우리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영남제일의 명당이라고 극찬했던 고봉선사의 말씀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1925년에 불이나 옛 모습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 채 사찰로 명맥만 유지하다 전통한옥기와인 대웅전을 비롯해 산신각, 요사채 2동이 더해져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오래된 느낌은 없으나 주위 산들로 둘러싸여 고요하고 아늑함을 자아냈다. 근래에는 종교 간에 얽힌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자 매년 울산지역 성직자들이 함께하는 선사음악회를 개최하고 있어 지역사회에서도 좋은 호응을 받고 있다.

멀리 녹음으로 우거진 가지산과 신불산의 배웅을 받으며 내려왔다. 비가 오지 않아 물이 그리 넉넉지 않지만 늘 그랬듯 머지않아 너럭바위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에 물장구치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땀도 식힐 겸 잠시앉아 계곡물에 발도 담그고 맘도 담가 보았다.

굳이 세상과 발 맞춰 갈 필요 있나
제 보폭대로 제 호흡대로 가자.
늦다고 재촉하는 이 자신 말고 누가 있던 가
눈치 보지 말고
욕심 부리지 말고 천천히 가자.
사는 일이 욕심 부린다고 뜻대로 살아지나
다양한 삶의 형태가 공존하며
댜양성이 존중 될 때만이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고 이 땅 위에서
너와 내가 아름다운 동행인으로 함께 갈 수 있지 않겠는 가

-홍승찬 ‘당신의 속도대로 가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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