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 보존 관련 생태제방안 반대는
대안 없이 차선책마저 외면한 처사
울산시민의 일방적 희생 강요는 안돼

▲ 윤시철 울산광역시의회 의장

얼마 전 만난 문화계 지인(知人)이 필자(筆者)를 보면서 넋두리처럼 한말이다. 그 말을 들은 지 몇날 며칠이 지났지만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그 지인이 토해낸 넋두리의 대상은 반구대암각화였다. 허탈감을 넘어 울분과 분노, 그리고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그러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차라리 그럴거면 수십년째 고문이 계속되고 있는 반구대암각화를 ‘안락사(安樂死)’시키자는 말까지 했다. 안락사는 다름아닌 반구대암각화를 폭파해 버리자는 것이다. 실제로 폭파하자는 의미는 아니지만, 암각화를 바라보는 울산 시민의 극단적인 심정을 대신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주지하다시피, 울산시는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해 생태제방안을 제시했었다. 생태제방안은 울산시가 작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5개월간 암각화 보존방안 기본계획수립 용역결과에서 수위조절안, 여수로 높이조정안 등 5개안 가운데 가장 타당한 대책으로 나온 것이다.

생태제방안은 암각화로부터 30m를 이격하여 둘레에 물이 침수되지 않도록 길이 357m, 높이 15m(해발 65m)의 제방을 쌓는 것이다. 약 370억원이 소요되며 물로부터 암각화를 완전히 격리할 수 있어 암각화 보존을 위한 최적의 방안이라는 것이다. 또한 접근교량(100m)이 설치돼 시민들이 암각화를 망원경없이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볼 수 있어 관람환경도 개선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결과적으로 생태제방안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이라며 울산시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는 울산시의 생태제방안에 대해 주변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면서 부결시켰다. 생태제방의 규모가 너무 커서 역사문화 환경을 훼손하고, 공사과정에 반구대암각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가변형 임시 물막이 설치추진 실패 이후 내놓은 대안이 또다시 문화재위원회로부터 부결되면서 반구대암각화의 고문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청의 사연댐 수위를 낮추는 안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반구대암각화의 물고문은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면 가능하겠지만, 사연댐은 울산의 물문제와 직결돼 있다. 울산의 주 식수원인 사연댐은 최근 극심한 가뭄으로 1965년 건립 이후 정수장 교체공사로 한차례 중단한 것을 제외하곤 사상 처음으로 취수 완전중단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이번 사태를 보더라도 식수원 공급을 대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암각화 보존을 위해 사연댐 수위를 낮추는 것은 생명수를 놓고 도박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처럼 울산의 물문제는 결국 시민의 삶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심각성과 중요성이 있다. 문화재위원회가 과거의 보존을 위해 울산의 현재와 미래를 맞바꾸자는 주장은 시민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재위원회가 현실적인 대안은 외면하고, 효율적인 대책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언제까지 어깃장만 놓을 것인지 암각화 보존과 울산의 더 나은 내일을 걱정하는 울산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반구대암각화의 보존은 문화재위원회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울산시민들이 더 많이 걱정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문제다. 암각화 보존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과 대안마련의 논쟁이 다람쥐 쳇바퀴돌기처럼 지속된다면 영원히 풀지 못하는 숙제가 될 것이다. 미래와 다음 세대를 위해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서둘러야 한다면, 조금 더 현실을 직시하고,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의 대책이라도 신속히 결정해야 한다. 암각화도 보존하고, 울산시민의 권리도 침해받지 않는 묘수가 하루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은 필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다. 이제 120만 울산시민들의 가슴속에서 응축되어 우러나오는 ‘어쩌란 말이냐’에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 그리고 정부가 응답할 차례다. 지금도 늦었지만, 더 늦기전에 나와야 할 것이다. 또다시 ‘어쩌란 말이냐’가 나온다면 반구대암각화는 회복불능의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윤시철 울산광역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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