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깊이가 얕아진 우리시대
어설픈 말과 글이 세상 어지럽혀
말과 글의 책임에 대해 생각했으면

▲ 이태철 논설위원

“문장을 몇번씩이나 고쳐도 어색함을 면치 못할때가 있다. 글밥 30년에 풍월조차 마음대로 읊지 못하다니, 망할.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이고 성당개 3년이면 주기도문을 외운다는 말이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시적이고 회화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메시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단문(單文)을 구사, 시대와 코드를 맞춘 문장과 감성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소설가 이외수의 푸념 아닌 푸념이다. 글쓰기를 업으로, 늘 같은 고민을 했던 필자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글쓰기의 달인 조차도 이럴진데….

140자로 글쓰기가 제한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트위터에서 170만여 팔로워를 거느린 ‘트통령’으로 군림해 왔던 이외수이다. <꿈꾸는 식물> <장수하늘소> <칼> <벽오금학도> <황금비늘> 등을 연이어 발표, 화려한 필력으로 197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 중의 한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어떤 문장에는 이빨이 있고 어떤 문장에는 발톱이 있다. 어떤 문장은 냉소를 머금고 있고, 어떤 문장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고, 글 한줄로 천생연분을 맺는다. 글은 자신의 품격을 대신한다”는 ‘말과 글’에 그의 단상(斷想)이 더없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어설픈 말과 글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작심한듯 내뱉은 정치인의 막말에서부터 ‘을’을 짓밟고 깔아뭉개는 ‘갑’의 폭력적인 말이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일부 연예인의 상황에 맞지 않는 말실수가 웃음거리가 되고, 철 모르는 아이의 ‘언어폭력’이 SNS를 달구고 있다.

사유의 깊이가 얕아진 우리 시대의 단면을 보는듯 하다. 밖으로 내뱉어진 말과 글에는 가볍지 않은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간과한 ‘언어의 폭력 시대’가 도래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배려는 뒷전이고, 대중의 주목을 받기 위한 화법에 젖은 ‘관심병종자’의 대중화 일 수도 있다. 오로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온라인이나 SNS에서 무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인터넷 용어인 관심병종자의 준말인 ‘관종’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언어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할 말을,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사는 자유를 누리는 우리나라는 정말 좋은 나라다’라고 말한다. 말의 사전적 의미는 음성기호나 문자 기호로 나타나는 사고(思考)의 수단. 또는 그 체계. 사람이 뜻을 전달하기 위해 일정한 소리의 체계에 따라 발음 기관을 통해 내는 소리다. 그렇지만 말하는 투나 품, 내용과 논리에 따라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 해라’ ‘말이 거칠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고, 여러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급기야는 설화(舌禍)로 이어지기도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의미나 목적을 가진 내용을 글자로 표현하는 글을 통해 정보 전달, 이야기나 감정의 표현, 또는 사실이나 의견 등을 나타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모멸감을 주거나 상처를 줄 경우 필화(筆禍)를 겪게 된다. 논리적 정당성까지는 못 갖추더라도 누군가를 해치거나 불행에 빠뜨리게 되지나 않을까하는 최소한의 배려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남을 공격하기 위해 내뱉은 말과 글은 언제가 반드시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 온다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미물이 아닌 ‘만물의 영장’으로 살기 위해서라도 ‘말과 글, 그리고 책임’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한다. 이태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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