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덩이가 창에 붙어 누런 진액을 흘렸다 어머니는 마른 풀잎 같은 기침을 자주 뱉었다 그때마다 등잔불이 가늘게 흔들렸다 밤이면 대숲이 빈 몸으로 울었다 돌아누운 어머니 등은 무덤처럼 둥글고 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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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 떠다니는 동안 닿지 않는 나를 향해 줄을 내리고 기어 다니며 기다림을 익혔다 허공에서 길을 놓친 그날, 햇빛이 들지 않는 습한 방에 담겨 둥글고 검은 울음을 울었다

골목 돌아서서 벽을 후려칠 때
낮게 걸려있는 집 한 채
턱을 박고 체액을 빨고 있는 내가 보인다
어머니가 몸을 푼 집
오그라드는 몸에서 내린 저, 질긴

▲ 엄계옥 시인

거미를 관찰한 적이 있다. 몸의 구조 다리 수 눈 입 그것은 영락없는 베틀 모양이었다. 순간 거미에 관한 그리스 신화가 생각났다. 신보다 베를 잘 짠다는 이유로 벌을 받아 거미가 된 여인. 베틀에 묶인 채 내장을 뽑아 직물을 짜는 아라크네. 그 여인은 땡볕에 검게 탄 채 삼을 찌고 베를 짜던 어머니였던 것, 이 시에서도 거미는 고단한 어머니다. 둥글고 검은 등. 기쁨보다 눈물이 많았기에 ‘내가 아는 노래는 언제나 짧았’ 던 것이리. 밤늦게까지 일을 하던 어머니, 허공에 낮게 걸려 있는 집 한 채로 남은 어머니는 우리의 탯줄 묻힌 곳이니 그 줄 생명의 끈이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거미의 나선사는 지구의 자전방향을 따라간다고 한다. 지구 또한 그 질긴 끈으로 휜 등에 턱을 박고 체액을 빠는 우주 생명들을 키워내는 모성의 원천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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