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선사인의 흔적들

▲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의 주출입구를 장식한 반구대 암각화.

BC 5700년경 신석기문명
황성동 세죽유적에서 확인
반구대 암각화 조성시기
신석기 중기무렵으로 추정

700만년 전 지구 최초의 인류인 사헬란트로푸스 차텐시스가 등장했다. 250만년 전 호모 하빌리스가 최초로 도구를 사용했다. 한반도에는 78만~13만년 전, 전기 구석기시대의 늦은 시점 무렵부터 구석기인이 이주해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남지역엔 대략 10만년 전 이후의 중기 구석기시대에 속하는 유적이 나타난다.

현재까지의 유적으로 추정하면 울산에는 구석기시대 후기부터 사람이 산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울산의 구석기 유적은 울주군 삼남면 신화리, 남구 무거동 옥현,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에 있다. 그 중 지금의 울산고속철역사 주차장 아래에 파묻힌 신화리 유적은 석기 제작소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 인류는 철따라 이동하며 수렵어로와 채집으로 생계를 꾸렸다.

1만년 전 온난다습해진 기온과 함께 신석기시대 정착생활문화가 형성되는데, 중국 눈강평원과 흑룡강 중류역에서 시작된 인류의 이동선은 남으로, 남으로 흘러 기원전 5700년 즈음 울산의 황성동 세죽 유적에서도 확인된다. 주로 도토리와 같은 식물성 식료 채집으로 생계를 이었지만 참굴과 홍합, 참돔과 방어 같은 어로활동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출토유물로 보아 이를 멧돼지, 사슴, 개와 같은 산지(山地) 산물과 교환한 것으로도 유추된다.

이후 신석기 중기의 유적으로는 조기에서 이어진 황성동(세죽)을 비롯해 신암리, 입암리, 궁근정리 유적이 있다.

반구대 암각화 조성시기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지만 수렵과 어로가 중시된 유적으로 본다면, 이 시기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요즘 반구대 암각화를 설명하는 한 줄 설명으로 ‘바위에 새긴 7000년 전 기록’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도 이와 같은 학계의 연구활동이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황성동 패총 유적에서 출토된 작살박힌 고래 뼈는 고고학적 층위연대 분석결과 7000년 전후로 확인된 반구대 암각화의 바위그림(고래사냥)이 울산 해안에서 실재했음을 알려주는 결정적 물증이라 할 수 있다.

입암리 유적은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유적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신석기 유적이어서 두 유적 간의 관계도 주목된다. 반구대 암각화는 동일 집단이 여러 세대에 걸쳐 조성한 것으로, 대형 짐승인 고래 포획을 기도한 의례가 있었다면 주민 수가 상당히 많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입암리의 경우 하안 충적지(물에 의해 운반된 무래나 흙 따위가 쌓여 이뤄진 땅) 3곳에서 신석기 중기의 유물이 발견돼 유적의 범위가 매우 넓은 것으로 추정돼 반구대 암각화와 밀접한 유적으로 상정할 수 있다. 정리=홍영진기자

<울산을 한 권에 담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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