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죽어서 노래가 된 자들이 털신을 신는 날이에요
하늘은 자꾸만 바다로 미끄러져요
이불 밖으로 발가락이 사그락거려요
당신이 오려나 봐요
나붓나붓 길어진 속눈썹이 당신을 여는 문인 줄 몰랐어요
바닥에 가만히 얼굴 뉘면 쌓이는 소리, 야윈 바람은 잔가지에 고였죠
불러본 기억만 있는 엄마가 머리카락처럼 하얗게 쏟아져요
혀끝에 닿는 손바닥은 기다리다 귀가 되었어요
지난겨울 죽은 노래는 당신을 기억할까요
해진 외투를 갈아입은 십이월이 손가락을 빠져나가요
어둑해진 공원엔 아무도 찾아가지 않은 신발, 의자에 담겨있어요
버린 노래가 자신의 그림자라는 걸 떠난 후엔 알겠죠
마당을 가로질렀던 귀가 대문에 매달려 있어요
신발을 신지 못한 숨소리가 사락사락
장송곡을 들려주세요

▲ 엄계옥 시인

회화에서 스푸마토기법이란 것이 있다. 인물을 어스름한 안개로 감싸는 몽환적 효과를 말한 다. 이 시에서도 그런 경향이 보인다. 이는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는개처럼 감싸는 방식이다. 한행 한행은 독립적이지만 전체로는 흰 것과 시린 것, 기다림이라는 맥락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시적 정황으로 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이야기 하고 있다. 흔히 첫눈을 숫눈이라고도 한다. 첫은 첫마음과 동일시된다. 첫눈 오던 날에 사랑했던 사람과 이승을 떠난 엄마가 동시에 떠올랐던 것. 흰 눈은 털신이 되고 그로인해 눈이 젖고 그 눈 속으로 걸어 들어온 당신과 서둘러 나간 당신, 눈물을 흘리는 방법도 시인마다 다르다는 걸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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