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만 바로잡아선 적폐청산 안돼
가정·학교에서 준법의식 교육 강화
부모 솔선수범과 시민운동도 필요

▲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지인 L(78)씨는 3년전 황당하고도 아찔한 일을 겪었다. 쯔쯔가무시에 감염된 줄 모르고 방치하다 2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문제는 계속 기력이 없고 식욕까지 떨어져 종합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폐에 문제가 생겨 가슴을 절개해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술 날짜를 잡고 기다리던 중 더 큰 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다는 권유로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서 진단 결과 폐에 문제가 없고 영상검사상 나타나는 것은 폐결핵을 앓고 난 후의 흔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몸 컨디션이 나쁜 것은 고령에 장기간 입원했기 때문으로 식사만 잘하면 되겠다는 말을 듣고, 바로 고기를 곁들여 배불리 먹으니까 힘이 났으며 지금은 아주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면서 만약 수술을 했더라면 필요 없는 수술비 낭비는 차치하고라도 고령에 외과식 수술 후 회복하는데 얼마나 고생했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확한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까 적합한 처방이 나올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병원에서만 일어나겠는가? 국가 일도 마찬가지다.

3년 전 우리는 큰 해난사고를 당했다. 세월호 사고. 사고 발생 한 달 후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기본대책을 발표했다. 내용은 정부조직 개편과 퇴직 공무원 취업제한, 부도덕 기업 처벌 강화 등이었는데, 한달만(미국은 9·11테러시 1년 후 대책 발표)에 졸속적으로 마련한 이 대책이 과연 공언한 대로 국가혁신 차원의 처방이 되었을까?

그로부터 2년 후 신설된 국민안전처 간부 4명이 비리혐의로 직위해제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인재라 할 수 있는 대형사고들이 반복되는 이유가 과연 정부조직이나 제도의 미비 때문일까?

지난 5월 출범한 신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그 첫 번째가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이다. 말 그대로 누적된 폐해를 없애겠다는 것인데, 부정·부패 등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만 치중할 경우 완전한 청산은 결코 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마치 제방에 물이 샐 때 시작되는 지점을 찾아 막지 않고 나오는 부분만 막을 경우 제2, 제3의 구멍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군대생활을 미군들과 같이 하면서 그 들의 풍족한 물자나 우수한 무기보다 더 부럽게 느낀 것이 있었다. 바로 각종 제도와 매뉴얼을 철저히 지키려는 의식이다. 세월호 사고의 원인도 짚어 보면(검경합동수사본부) 무리한 선실 증축과 화물 과적 그리고 조타수의 운전 미숙 등인데 모두 제도가 미흡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바로 우리 가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잘못된 의식 때문이다.

제도야 어떻든 ‘이쯤이야’ 하면서 자기 편익만 생각하고, 매뉴얼이 있는데도 대충 해버리는 안전 불감증 등등. 제대 후 공직에 근무하면서 가시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똑 같은 20대 초반의 젊은이 들인데 우리와 서양인들의 의식이 왜 그렇게 다를까?’

나름 내린 결론은 그들은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교육을 꾸준히 받았고 어른들의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며 또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탓도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경우 아직 제도적으로도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 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의 의식도 최근 많이 나아지고는 있으나 아직은 미흡하다.

그래서 제언해 본다. 정부에서는 국정과제 1호인 적폐청산의 일환으로 국민이 철저한 준법의식을 가지도록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노력하자는 것이다. 우선 유치원부터 각급 학교 교육에 법질서를 지키는 준법의식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가정에서도 부모들이 먼저 지키면서 교육을 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언론 매체를 통해 선진국과 우리의 모습을 비교, 자각할 수 있도록 하고,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대대적인 국민운동을 벌여 정착시킴으로써 안전한 국가, 부정·부패 없는 국가 그래서 국민 모두가 당당하고도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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