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강제입원 인권침해 논란에 법개정 나서
자해·타해 위험에 의사 두명 진단 명기
엄격한 기준정해 대대적인 홍보도 실시

예외규정엔 거주시설 없으면 퇴원 불가
전문의 2인 진단 입원은 선진국도 없어
인권침해 막을 진정한 제도 마련 필요

정신질환자의 퇴원대란은 괜한 걱정이었을까? 지난 5월30일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면 앞으로 만여 명의 환자가 한꺼번에 퇴원하여 큰 사회문제가 되리라 전문가들은 우려하였다. 하지만 혼란은 없었다. 보건복지부는 법 시행 한 달 뒤 자평하였다. “강제입원 환자의 대규모 일시 퇴원 등의 혼란은 없었고, 제도가 현장에 정착중이다.” 얼핏 보기에는 법이 무리 없이 시행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면 진실은 무엇일까? 법은 시행되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법의 핵심 조항은 모두 정부의 예외 규정으로 무력화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정부의 법 개정과 시행 과정을 살펴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우선 정책보다는 여론에 편승해서 법을 만든다. 일단 법이 통과되면 비현실적인 조항이 있어도 무시하고 밀어붙인다.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법은 형식적으로 시행한다. 법의 성과를 포장하고 홍보한다. 이런 식이다.

그동안 이해관계에 따라서 환자를 함부로 강제입원시킨 사례가 여러 차례 보도되면서 법 개정의 압력이 커졌다. 누구나 닥칠 수 있는 일이라 국민들의 불안과 분노도 커졌다. 정부는 이러한 사회분위기를 타고 인권 침해를 막을 법 조항을 급히 도입하였다. 핵심 조항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강제입원의 요건을 극히 제한하였다. 입원치료를 요하는 정신질환이 있더라도 반드시 자해나 타해의 위험이 있어야 한다. 둘째, 강제입원을 지속하려면 소속이 다른 정신과 의사의 추가 진단이 필요하다.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면서도 꼭 필요한 치료는 받도록 하려면 국제 기준과 선진국의 사례를 잘 검토하여야 한다. 이미 치료의 문턱이 높아지고 환자들의 사건사고도 늘어나는 현실도 고민거리다. 하지만 개정법은 이를 무시한 채 단지 규제만을 강화하였다. 법 시행이 가깝도록 의료 인력도 퇴원 환자를 돌볼 인프라도 준비되지 않아 부작용이 우려되자, 정부는 시행지침으로 두 가지 조항을 슬그머니 무력화하였다.

첫째, 자해 위험을 넓게 해석하여 치료 필요성 수준으로 확대하였다. 자해 위험으로는 ‘치료가 필요한 증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식의 부재 등으로 증상이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는 경우’ 등을 열거하였다. 정부가 국민에게는 이전처럼 치료 필요성 요건만으로는 강제입원이 안 된다고 홍보하더니, 의사에게는 기존 법과 다를 바 없다고 넌지시 일러준 것이다.

심지어 입원연장 심사를 할 때에도 ‘퇴원 시 보호할 사람이 있는지, 거주할 시설은 있는지 검토하라’는 지침을 내놓았다. 물론 평소에도 의사는 환자의 지지체계를 고려한다. 이는 환자의 증상이 호전되어도 국가의 인프라 준비 부족 때문에 강제입원을 연장하는 것과는 다르다. (참고로 울산은 전국의 광역시·도 중 유일하게 거주할 사회복귀시설이 없다.) 개정법의 기준을 적용하면 치료의 사각지대가 늘어나리라 우려하던 의사들은 혼란스럽다. 이럴 거면 정부는 입원기준이 엄격하게 바뀌었다고 왜 그렇게 열심히 홍보하였을까?

둘째, ‘소속이 다른’ 정신과 의사 인력이 부족하자 연말까지는 ‘같은 병원’ 의사도 추가진단 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두었다. 게다가 이웃 민간병원끼리 짝을 지어 서로 추가진단을 해주도록 하니, 독립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기대할 수 없다.

정부는 법 시행의 근거로 ‘다수의 선진국에서 UN 기준에 부합되도록 비자의입원의 경우 전문의 2인의 진단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UN에서는 일부 입원 환자에게, 그것도 가능한 경우에만, 전문가 2인의 평가를 권고하였다. 세계보건기구는 UN의 권고를 언급하면서, 선진국조차도 입원 시에 전문가 2인의 진단은 대개 비현실적이며, 이에 대해서 확립된 규칙은 없다고 강조하였다.

더구나 입원 시 ‘소속이 다른’ 정신과 전문의의 추가진단을 요구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선진국일지라도 입원 초기마다 외부 병원에서 전문의 왕진을 요구할 만큼 전문 인력이 넉넉한 나라가 없고, 민간병원 인력을 국가가 마구 동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정신과 의사 수가 6.6명으로 OECD 국가 평균인 15.6명에 한참 못 미친다. 정신의료 인프라가 가장 열악한 나라에서, 국제 원칙에도 맞지 않고,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도 어려운 까다로운 제도를 고집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인권을 보호하는 가장 확고한 국제 원칙은 무엇일까? 의사가 입원 필요성을 진단하되 판사나 독립된 심의기구의 전문가가 직접 환자를 면담하고 최종 결정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선진국이 이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의사들도 이러한 원칙을 지지한다.

개정법은 이런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형식적인 서류심사나 절차 조사에 머무르고 있어서 국제 기준에 맞지 않다. 작년 말 강제입원 조항 헌법 불합치 사유에서 강조한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제3자의 판단 절차’를 갖추지도 못하였다. 무엇보다 이러한 제도로는 인권침해를 막을 수 없다. 어설픈 인권보호 흉내 내기는 이제 멈추어야 한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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