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광개토태왕이 영락의 연호를 쓰며 즉위한 지 9년, 태왕은 단기필마로서 동서남북을 누비면서 고구려의 영토를 확장해 강력한 대제국을 건설했다. 요동을 비롯한 중국 동북지방의 대부분과 한반도의 한강상류지역까지 광활한 지역을 아우른 명실상부한 동아시아의 패자, 대제국이 되었다. 이제 고구려는 으늑한 변방구석의 지방 국가가 아니었다. 동서 6천리와 남북 4천리의 넓은 땅과 율령을 갖춘 탄탄한 국가체제, 그리고 20만의 강군을 가진 나라였다. 하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전쟁으로 심신이 피폐해지고 영혼이 목말랐다.

‘이제 살생을 불러일으키는 정복전쟁보다는 외교와 내치에 치중하고, 절에 머물며 그동안 피 흘린 넋들의 천도를 올리며 마음을 닦아야겠다.’

그는 마음이 갈급할 때마다 고구려의 고승, 순도를 찾아갔다. 순도는 소수림왕 때 전진의 부견이 사신으로 파견한 승려였다. 순도는 고구려에 불상과 경전을 들고 와 자비와 불살생, 평화의 도를 전했다. 그는 고구려에 귀화하여 국내성에 초문사를 짓고 불교의 초전 전파에 힘썼으며 소수림왕은 이에 감복 받아 불교를 공인하게 되었다. 광개토태왕이 태자 담덕인 시절, 처음 노승 순도를 찾아 초문사로 갔을 때는 한창 팔팔한 나이였다.

순도화상은 태자를 한참 바라보더니 눈을 감고 염주알을 굴리며 장탄식을 했다.

“아, 눈빛에는 칼날이 번뜩이고, 가슴에는 탐진치의 욕망이 들끓으며, 발에는 아수라로 가는 길이 열려 있구나.”

젊은 담덕은 순도의 말을 듣자마자 매우 기분이 나빴다.

“감히, 태자인 나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무엄하구나. 고구려 무장들은 당신을 전진에서 파견한 세작이라고 말하네. 전쟁에 능하고 무예를 숭상하는 고구려에 문약한 노예사상인 불교를 퍼뜨려 호전적인 상무정신을 무장해제하고 있다고 말이야.”

“태자마마, 불도에는 계급이 없으며 부처님 앞에는 만인이 평등합니다. 불살생의 자비만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영혼을 맑게 해 마음의 안식을 누리게 합니다.”

담덕은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순도의 절방문을 차고 나와 다시는 초문사를 찾지 않았다. 대신 비슷한 시기에 동진에서 파견한 아도화상이 창건한 이불란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도화상은 그를 보자마자 예언을 하듯 말했다.

“태자를 보니 인도의 전륜성왕 아육왕의 환생을 보는 듯합니다. 반드시 한반도를 통일하고 불법을 크게 흥왕케 할 대군주가 되실 분입니다.”

담덕은 아도화상의 말에 기분이 좋아 자주 이불란사를 찾았다. 아도화상은 한반도 불교의 전파에 정력적이고 정치적 야망도 있었다. 그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사국을 두루 다니며 불도를 전파하면서 각국의 정보를 수집하여 담덕에게 전달했다. 광개토태왕은 즉위한 이듬해에 아도화상을 고구려의 왕사로 삼음과 동시에 평양에 9개의 절을 창건하고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게 했다.

하지만 태왕은 피비린내 나는 전투 현장에서 숱한 주검과 살생의 업보를 보면서 점점 초문사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의 영혼은 순도화상의 순수한 불법 아래 무릎을 꿇게 되었다.
 

 

우리말 어원연구

넋. 【S】nih-aksi(니아크시). 【L】nex.

【E】spirit, violent death. 넋의 받침이

왜 ‘ㄱ’ ‘ㅅ’인가를 산스크리트어를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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