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 등 기본기 철저히 익힌 후
6개월 정도 영어환경에 노출
매일 꾸준히 학습하는 게 최선

▲ 김선규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인사이트개발연구원 원장

최근 뉴스를 보면 여섯 살배기 자녀를 이른바 ‘세미 영유’에 보낸다는 것이다. 엄마들 사이에서 영어유치원을 ‘영유’로 줄여 말하는데, 여기에 ‘세미(semi)’를 붙인 것이다. ‘준영어유치원’이라는 뜻이다.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 영어교육 열풍이 불면서 ‘세미 영유’라는 변칙적인 유치원까지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무한경쟁 시대에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더 일찍 영어를 가르치겠다는 극성학부모들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름난 영어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해 영어를 따로 과외공부시킨다는 말도 들린다. 이런 유아대상 영어학원은 서울에는 200여개가 넘고 비싼 학원은 월 200여만원대이고, 평균 학습비는 서울 100여만원대, 울산은 70만원대라고 한다. 세미 영유로 간 아이들은 놀 시간이 없다. 영어를 잘하는 아이를 만든들 그 아이의 인성은 어떻게 될까 걱정이다. 남이 하니 안하면 내 아이가 뒤쳐진다는 맹목적인 경쟁의식이 아이를 망치는 것은 아닌지. 영어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 교육이다.

대학도서관에 가보면 많은 학생들이 1학년때부터 토익공부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4년간 죽어라 해도 원하는 점수를 획득하지 못해 많은 학생들이 고민한다. 전공지식을 쌓아야 할 대학생들이 4년 동안 영어공부에만 몰두하고, 직장인은 실전영여를 배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국민 전체가 영어공부에 쏟아 붓는 시간과 돈은 하기 천문학적이다.

왜 이렇게 영어 배우기가 어려울까? 우리의 언어구조와 완전히 상이하기 때문이다. 우리 언어는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하는데 몽고인이 한국말을 배우면 액센트 없이 말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영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고 라틴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면 언어구조가 이렇게 다른 어려운 영어를 어떻게 할까?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영어를 왜 원어민처럼 매끄럽게 해야 하는가? 영어는 의사소통의 도구이다.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다. 만약 미국인이 한국에 와서 액센트 없이 한국말을 완벽하게 하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는가?

한국인이 영어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말하기와 듣기인데 사실 이것은 가장 쉬운 것이다. 영어의 기본기를 철저히 닦은 후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6개월 정도만 노출시키면 저절로 된다. 필자는 영어를 중학교 때부터 대단히 좋아해서 열심히 했고 성적도 자연히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졸업, 군 복무때까지도 귀와 입은 트이지 않았었다. 다행히 간부후보생과정을 마치고 해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미해군 장교를 알게 돼 6개월간 자주 만났더니 신기하게도 입이 열리고 들리는 것을 체험했다. 미국 유학 생활중에도 영어로 인한 어려움을 겪지 않을 정도였다.

영어는 매일 해야 한다. 몇 개월 해서 점수 올리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왜 기업체에서 사람을 뽑을 때 영어를 보는가? 물론 업무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어려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 즉 성실한 사람이라고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영어를 잘 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필자는 미국에서 귀국한 후 의식적으로 매일 영어를 사용해왔기 때문에 실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지금도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사전을 찾는다. 많은 학생들이 외국 언어연수 갈까요라고 질문해 오면 필자는 그들에게 한국에서 기본기를 얼마나 익혔나 물어본다. 한국에서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가지 마라 돈 낭비라고 얘기해준다.

지금은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얼마든지 한국에서도 조성할 수 있다. 요즘은 말하기에 중점을 두고 문법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원어민들은 자랄 때부터 영어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문법을 중시 안해도 되나 우리는 외국어이기 때문에 문법을 잘 알아야 한다. 축구선수가 축구 경기의 룰을 알아야 하는 것과 같이 문법은 영어를 플레이하는 룰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빨리 배워주겠다고 온갖 상술을 써서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을 많이 보는데 매일 꾸준히 외우고 또 외우는 것 외에는 왕도가 없다.

김선규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인사이트개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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