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동그랗게 오려낸
가로등 불빛 아래
한 여자가 구겨져 있네

머리카락으로 뒤덮인
가녀린 어깨로
흐느껴 울고 있네

휘어진 꽃대 같은
목이 긴 이 슬픔
안쓰러워 어쩔거나

무정하니도
까만 밤이 하얗게
한 여잘 지워버리겠네

▲ 엄계옥 시인

한 권의 시집에는 그 사람 태고적 성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될 수 있으면 시집 째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과 사람이 일치되게 살기란 쉽지가 않다. 실핏줄처럼 맑고 섬세한 감정의 파동이 감지된다. ‘골수에 사무친 외로움’과 작은 발소리에도 쓸린 흔적들이 글과 삶이 한 몸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타자에 대한 정이 깊은 시다. 내면에 품은 선한 응시로 오늘도 가등 아래 흐느끼는 여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안쓰러운 시선으로 목이 긴 슬픔을 감싼다. 인간의 하루는 흐느낌과 훌쩍거림 미소로 채워진다.(오 헨리) 그 중에서 가장 절실한 것이 흐느낌이라서 예민한 귀를 잡아끈다. 시인은 사물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이 뛰어나서 타인의 구겨진 슬픔에 쉬이 동승을 하고, 그 아픔이 내 아픔과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임을 주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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