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은 소수의 향유층만으론
확대 재생산과 지속적 발전 어려워
울산시민 1人1技 문화역량 갖췄으면

▲ 홍영진 문화부장

반백발의 박태효씨는 젊은 시절 사업을 했지만 이제는 젊은 작가들에게 작업실과 숙식을 제공하는 레지던스 공간을 운영한다. 예술사랑이 지극한 그는 일상 속에 미술을 끌어들인 것도 모자라 얼마 전 부터는 울주군 언양읍주민센터의 노래동아리에도 가입했다. 12일 시청에서 열린 울산시 주민자치센터 동아리 경연대회에 그를 포함해 30명의 ‘모두다함께’팀이 무대에 올랐다. 곡목은 우리의 정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합창곡 ‘아리랑’. 색소폰과 꽹가리, 민요와 성악 등 동서양의 발성과 악기가 묘하게 섞이는가 싶더니 마침내 아름다운 하모니를 완성했다. 회원들은 프로가 아닌 일반인들로 연령대도 들쭉날쭉, 기량도 천차만별이었다. 완벽한 화음을 만들지는 못했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울림이 컸다. 정제되지 않은 낱낱의 목소리가 합창곡 안에서 둥글게 뭉쳐지기까지, 녹록지않은 일련의 과정이 노래를 든든하게 받쳤다. 노래를 사랑하는 한마음으로, 오랜 시간 다함께 공들인 결과임을 알 수 있었다. 5개 구군을 대표한 15개 팀이 자웅을 겨룬 이 날, 그들은 대상을 거머쥐고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다음달 광주에서 열리는 전국 주민자치센터 동아리 경연대회에 울산대표팀으로 출전한다. 결전의 그 날 까지 더 나은 하모니를 만들자며 또다시 연습의 고삐를 죄고 있다.

남구 야음장생포동주민센터의 한국무용반은 ‘부채춤’으로 2등상인 최우수상을 받았다. 무용수들 대부분은 장성한 아이를 뒀거나 오래 전 손주를 본 할머니들. 화려한 부채를 이리저리 흔들다가 빙빙 돌아가는 꽃봉오리를 만들고 일렁이는 물결을 연출해야 했지만, 어느 누구도 공연 중 단 한 번의 실수나 이탈없이 수준급의 실력을 보여 줘 큰 박수를 받았다.

‘언제나 청춘’은 동구 남목1동주민센터의 동아리였다. 공연명은 노인스포츠댄스. 관절이 좋지않은 어르신이었지만 이날 만큼은 뾰족한 댄스화에 붉은색 스커트로 한껏 멋을 냈다. 신명나는 음악이 흐르자 스무 명의 남녀커플 모두가 경쾌하게 스텝을 밟았다. 올해 ‘8학년’이 된 최고령 할아버지는 “적게 먹고, 즐겁게 춤추는 게 젊음의 비결”이라했다. 호흡이 잘 맞아 10여년 이상 손잡고 있다는 할머니에 대해서는 ‘아내가 아니라 여자사람친구’라고 소개해 공연장에 큰 웃음을 선사했다. 이들팀은 3등상인 우수상을 받았다.

주민자치센터 동아리 경연대회는 울산시내 56개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의 생활문화예술을 활성하기 위해 2010년부터 해마다 추진돼 왔다. 전문 공연예술인의 그 것과는 다르지만 이들의 무대에도 그 못지않은 감동과 사연이 들어있다. 일상의 예술문화 현상은 비단 울산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 7~10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생활문화축제에는 전국 13개 권역 102개팀 1000여 명이 출전했고 이를 응원하기 위해 7만여 명의 대내외 관람객이 함께했다.

예술이나 문화는 아이들만 하는 게 아니다. 한평생 춤하고는 거리가 멀었어도, 단 한번도 악기를 다뤄보지 않았어도,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노래하고 춤추는 시대가 되고 있다. 주민센터는 물론이고 박물관, 미술관, 문예회관, 도서관, 생활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강좌·강습 프로그램은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 문제는 울산 전역 마을 곳곳마다 이처럼 문화예술을 배우고 즐길 기회가 적잖은데도 정작 시민들은 잘 모른다는데 있다.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 최근 통합체육회가 출범했듯이 문화와 예술 또한 소수의 전문 예술인만으로는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민 누구나 ‘1인1기(技)’의 문화역량을 갖추는 게 과연 꿈일까. 건강을 위해 체육동아리나 헬스클럽을 찾듯 주변의 문화센터도 한번쯤 찾아보자. 모두가 염원하는 문화도시는 그렇게 한걸음씩 관심이 모아질 때 완성된다.

홍영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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