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가 국제정세를 제대로 못읽어
나라가 결딴난 지난역사 거울 삼아
지금은 모든 척도를 국익에 맞춰야

▲ 이광복 국회 입법정책연구회 부회장

병자호란은 47일 만에 끝났다. 조선의 무능한 신하와 어리석은 임금이 자초한 치욕의 기록은 47일에 불과했지만 죄 없는 백성들의 피와 한의 크기는 역사상 그 어떤 비극 못지않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오래 전부터 명나라는 중병을 앓고 있었다. 청나라가 패권을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대세가 기울었음은 이성과 상식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간파할 수 있었다. 청나라는 조선에 수차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조선은 청을 오랑캐라며 배척하고, ‘조선은 명나라의 신하’(1636년 5월 26일 인조 교서)임을 자처했다. 결국 그해 12월 병자호란이 터졌다. 청의 군사는 순식간에 한양으로 쳐들어왔다. 인조는 시체 옮기던 문을 통해 한양을 빠져나와 허겁지겁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임금과 신하는 농성(籠城)하던 남한산성 안에서도 변한 게 없었다. 그들은 싸우자는 쪽과 화친하자는 쪽이 갈라져 여전히 드잡이질 하는데 세월을 보냈다.

이듬해 설날, 더욱 기가 차는 일이 벌어진다. 인조가 이역만리 명나라 황제에게 망궐례(望闕禮)를 올린 일이다. 망궐례는 조선의 왕이 중국 황제의 생일, 설날, 동지 등에 중국의 궁궐을 향해 예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이 어이없는 짓거리는 1896년, 대한제국이 세워진 뒤 폐지되었다). 백성들은 피눈물 흘리고, 나라가 백척간두인 상황에서 관료들은 망궐례의 격식을 두고 또 한바탕 난상토론을 벌였다. 인조는 세자와 함께 명나라 황제에게 올리는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청 태종이 그 장면을 남한산성 동쪽에 있는 산봉우리에서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인조실록에 나와 있는 얘기다. 청 태종은 다음날 인조에게 편지를 보내 “너희 아버지(명나라)가 구하러 올까?”라며 조롱했다. 인조는 부끄러움이라도 느꼈을까? 모두 알다시피 이 전쟁은 인조가 지금의 잠실 한강변인 삼전도에 나가서 땅에 이마를 찧고 청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맹세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지도자가 무능하고 어리석으면 나라가 결딴난다. 지도자가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올바로 못 읽으면 국민이 치욕스러운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지도자의 정치철학이 고착화되면 국태민안은 물 건너간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 모두 허망한 말장난일 뿐이다. 지도자가 섬겨야 할 불변의 정치목적은 안보와 국익과 국민권익뿐이다. 그 외의 것들은 변수일 뿐이다.

21세기 한국을 보자.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얼마나 유능하고 현명한가? 북한 핵무기가 바꾸고 있는 국제정치질서의 판을 이해하고 있을까? 북핵 때문에 우리가 고립무원 돼 가고 있음을 느낄까? 중국의 속내를 애써 외면하고, 미국을 과신하는 것은 아닐까? 북이 재래식 국지전을 일으켜도 핵 때문에 응징할 수 없다는 걸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내리막길에 접어든 우리경제가 이런 판국에서 한국의 입지를 얼마나 좁게 만드는 지 깨닫고 있을까? 우리가 대화와 협상에서 최소한의 지분이라도 확보하려면 힘을 가져야 하고, 그 힘의 기반이 경제력임에 동의할까? 그래서 오늘도 과속 중인 정부의 산업·에너지·경제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용기가 있을까? 국민을 위해 어떤 희생도 치를 준비가 돼 있을까? 그렇게 지혜, 지식, 용기, 헌신이란 덕목을 품고 있을까?

적폐 청산, 좋다. 정치 개혁, 그것도 좋다. 복지 강국, 그 또한 훌륭하다. 하지만 우리가 힘을 잃은 뒤, 생존영역을 뺏긴 뒤, 또다시 굴종의 역사를 쓴 뒤에는 모든 것이 허망한 이상일 뿐이다. 지금은 오직 국가와 국민의 생존과 번영만이 모든 판단과 결정의 척도가 돼야 한다. 위기를 벗어날 때까지 만이라도 이 땅에 진보와 보수의 구분은 사라지고 대한민국 국민만 존재했으면 한다.

이광복 국회 입법정책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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