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영하의 글 중에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주인공은 아침 출근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한 남자를 목격한다. 그러나 출근시간에 쫓겨 그냥 지나치고 나름대로의 바쁜 일로 아침의 일을 까마득히 잊는다. 다 저녁 퇴근길에서야 이웃들에게 ‘엘베남’의 생사를 묻지만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그래서 나는 궁금하다.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수많은 사건․사고 가운데 작고 사소한 뉴스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각종 범죄사건에서 가해자에게만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피해자의 안타까운 상황보다는 가해자의 비상식적인 범행 동기나 성향 등이 상식의 범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뉴스적 흥미를 더욱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범죄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시에 존재한다. 또한 ‘객관적으로’는 별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일이라도 피해자로서는 ‘주관적으로’ 크게 훼손된 일상을 복구하려 저마다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피해자의 슬픔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기만 할까.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하여 경찰은 지난 2015년 피해자전담경찰관 제도를 내놓았다. 사회 곳곳에 산재된 피해자들의 저마다의 슬픔을 제도의 울타리 내에서 체계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다.

피해자전담경찰관은 말 그대로 범죄피해자에 대한 종합적인 보호․지원을 담당하는 경찰관이다. 가령 보복피해가 우려되는 피해자에게는 강력한 신변보호를, 범죄피해로 생계가 막막하거나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할 때에는 치료비․생계비와 같은 경제적 지원과 심리상담 등의 지원서비스를 다수의 유관기관과 연계해 제공한다.

전국 각 경찰서에 필수로 배치된 전국 306명의 피해자전담경찰관들은 범죄피해자가 맨 처음 만나는 국가기관인 경찰이 피해회복의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명감으로 분주히 뛰고 있다. 또한 사건 초기에 피해자에 대한 신속한 보호․지원을 이뤄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기관 역시 경찰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이들에게는 막중한 책임감이다. 제도 3년차에 접어들어 경찰의 적극적인 피해회복 설계로 범죄피해자들이 일상 회복에 안착한 사례는 언론보도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한 사회에서 범죄의 피해는 결코 개별적일 수 없다. 범죄는 해당 사회의 구조적인 빈틈을 비집고 기회를 포착하기 때문에 그의 예방 뿐 아니라 피해 역시 사회전체가 합심해서 치유해야할 산물이다.

뉴스 범람의 시대, 잊혀져가는 상처, 그러나 꼭 필요한 위로…. 수많은 범죄 피해자들은 비일상적인 상황을 누구에게도 쉽게 공감 받지 못하며 오늘도 남몰래 눈물 흘리고 있다. 그들은 어쩌면 우리 안의 ‘엘베남’(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일지도 모른다.

‘피해자, 두 번 눈물 흘리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피해자전담제도의 슬로건인 이 문장이 함축하듯 피해자 보호지원에 대한 경찰과 우리 사회의 노력이 계속 되는 한 범죄피해자들의 상처는 점점 더 아물어 갈 것이다.   부산금정경찰서 피해자전담경찰관 순경 안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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