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을 맞출때 나는 기타 줄의 공명처럼
사람도 각자 고유의 진동수를 찾아내
그 떨림 조율하면 큰울림 만들어낼듯

▲ 정다주 울산지법 부장판사

중학교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기가 바뀌어 새로운 짝과 함께 하게 되었다. 서로 죽이 잘 맞아서 금세 친해졌는데, 하루는 그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녀석이 기타를 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중학생밖에 안 되는 놈이 멋진 클래식 기타를 척 하니 무릎에 놓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로망스 등을 연주하는 모습은 내게 정말로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곧바로 아버지를 졸라 서울 낙원상가에서 기타 한 대를 사고야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당시의 나는 악기를 배우는 데에 필수적인 끈기나 소질이 턱없이 부족했다. 한 달 남짓 새 기타와 교본을 끌어안고 낑낑대긴 했지만 결국 포기했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시피 기타는 방 한 구석에서 먼지만 풀풀 뒤집어쓴 채 잊혀졌다.

그런데 한창 기타와 씨름하던 그 무렵 발견한 재미있는 현상이 있었다. 기타를 연습하기 전엔 기타 줄을 맞추곤 했는데, 요새는 튜너 혹은 튜닝기라고 부르는 기타 조율기가 흔해서 액정 화면을 보며 쉽게 줄을 맞추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물건이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시절이라 그저 전통적인 방법으로 조율했다. 일단 다른 악기를 이용해서 5번 줄을 라(A) 음에 맞춘 후 나머지 줄을 5번 줄과 비교해가며 맞춰나가는 거다(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상대음 튜닝법’ 정도로 불리는 방법인 것 같다).

헌데 그렇게 줄을 맞춰가다가 음이 정확하게 맞는 순간이 되면 줄이 저절로 떨리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4번 줄을 맞추기 위해 4번 줄의 음에 해당하는 레(D) 음을 5번 줄로 만들어 튕기면, 건드리지도 않은 4번 줄이 저 혼자서 부르르 진동하는 식이다. 진동이 기타의 몸을 통해 직접 전해져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옆줄은 항상 떨어야 할 텐데 그게 아니라, 음이 딱 맞는 때에만 마술처럼 떨림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학교 다닐 때 과학 수업을 열심히 들은 사람은, 소리를 발생시키는 모든 물체는 자기만의 고유 진동수를 가지며, 자신의 진동수와 똑같은 진동수를 지닌 음파가 와서 부딪치면 저절로 진동하게 되는데, 이를 ‘공명(共鳴) 현상’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소프라노 가수가 와인 잔 앞에서 잔의 고유 진동수와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잔이 스스로 떨다가 깨져버리기도 하는 것이 바로 이 원리 때문이다.

스스로 떨리는 기타 줄을 보면서 문득 사람 사이에도 이런 현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사람도 저마다의 고유한 진동수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같은 떨림의 사람과 소통하면 저절로 묘한 떨림이 일어나는 걸까. 거꾸로, 진정으로 소통하려면 서로의 진동수를 찾아내어 조율하고 튜닝해야겠구나 등등.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기타에 도전한다. 적어도 ‘중산층’이라고 하려면 몇 평짜리 아파트를 소유하였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퐁피두 대통령이 내렸다는 정의처럼­- 다룰 줄 아는 악기는 하나쯤 있어야 하겠기에, 중학교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기타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법원 내에서 동호회 회장을 맡게 되면서 직함을 생각해서라도 ‘배워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끈기의 부재 따위는 핑계 삼지도 못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면서 다시 기타 줄의 떨림을 볼 때마다 이제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법원과 세상의 소통도 이래야하지 않을까. 재판 당사자들이 가진 마음의 진동수에 관심을 가지고, 법원이 가진 기타 줄을 그에 맞추어 짚어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진정으로 그 마음들에 묘한 떨림이 일어나는 순간을 찾는 인내와 세심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울산지방법원의 작은 떨림이 세상에 큰 울림으로 전해지기를 기대하며 기타를 연습한다.

정다주 울산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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