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진희 울산 북구의회 의원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소설책을 손에 쥐고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나와 띠동갑인 82년생 김지영은 내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 이건 소설이 아니라 자서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얻고,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고, 다시 일을 하고 싶지만 경력단절로 가정에 머무르게 되는 김지영의 삶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0대 여성들의 삶이다.

“월급 대부분을 베이비시터에게 쏟고도 늘 발을 동동거리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남편과 매일 전화로 싸우며 급기야 어느 주말 아이를 업고 사무실에 나타난 후배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 속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김지영은 쉽게 만날 수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94년생 우리네 딸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거다. 94년생 딸들이, 2006년생 우리의 딸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고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우리네 현실 속 김지영은 높은 물가에 맞벌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살아가지만 경력단절의 두려움과 성차별적 요소가 여전히 살아있는 사회 속에서 아이를 낳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초저출산을 경험하고 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1.3명 미만에 멈춰있다. 정부는 10년간 2차례에 걸쳐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실시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이미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15세 미만의 유소년 인구를 추월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저출산 문제를 ‘국가적 위기’로 진단하고, 특단의 대책을 지시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저출산 해결을 위해 지난 10년간 100조원을 썼는데도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 인구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국가적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년 간 저출산 대책에 100조원을 투입했음에도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이제 저출산 관련 정책 및 예산에 대해 엄격히 재평가하고,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점검한 뒤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단순히 재정지원을 통해 아이를 낳으면 지원하겠다는 정책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 출산지원금을 뛰어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저출산·저성장 시대에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하는 책임과 더불어 사회에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이중의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직장에서 결혼과 출산으로 차별받지 않아야 하고 일과 가정이 양립되는 노동조건이 보장돼야 하며, 보육시설이 충분히 제공되는 환경에서 남편과 함께 육아와 가사노동을 공동으로 책임지는 성평등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꼬여버린 실타래를 풀 수가 없다. 여성이 일을 계속하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최저출산율, 최장 노동시간, 최하위 국민행복지수의 오명을 벗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이제 시작돼야 한다. 국가와 지방정부가 아이를 키우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줘야 근본적으로 출산율을 올릴 수 있다.

지난해 12월말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각 시도 및 시·군·구별로 저출산 전담팀을 설치토록 해 북구에도 올해 7월부터 출산장려계가 신설됐다.

인구는 그 도시의 성장 가능성과 지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출산지원금과 출산장려 홍보사업 등에만 힘을 쏟고 있다. 이래서는 안된다. 성평등 가치관의 확립과 더불어 성별격차가 없는 사회적·제도적 장치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 여성들의 일·가정 양립이 가능할 것이며 저출산 문제 해결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울산시가 저출산문제 해결을 위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5개 구·군과 함께 울산시의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논의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이나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라는 소설 속 질문처럼 저출산정책의 올바른 해답을 구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