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571돌 한글날을 맞아 채널 CGV에서 추석특선영화 ‘덕혜 옹주’를 방영하며 덕혜옹주의 삶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9일 571돌 한글날을 맞아 채널 CGV에서 추석특선영화 ‘덕혜 옹주’를 방영하며 덕혜옹주의 삶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영화 ‘덕혜 옹주’는 권비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고종 황제의 막내딸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가 역사의 격랑 속에서 겪어야만 했던 비극적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 덕혜옹주의 방영에 실제 덕혜 옹주의 삶에 대한 관심 역시 뜨겁다.

고종 황제의 막내딸로 태어난 덕혜 옹주는 고종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자랐으나 불과 8살 때 고종 황제가 승하하며 홀로 남게 됐다. 덕혜 옹주는 이후 일제의 압박에 의해 일제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당시 일본은 조선 황실을 장악하기 위해 덕혜 옹주에게도 일본 유학을 강요했고 순종은 결국 1925년 3월 덕혜 옹주의 일본 유학을 명했다. 14살의 나이에 조선을 떠난 덕혜 옹주는 영친왕과 부인 이방자가 거처하던 동경의 집에서 머물렀다.

덕혜 옹주는 당시 일본 여자학습원에 다녔는데 늘 개인 보온병을 들고 다녔던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일본인 친구들이 이유를 묻자 덕혜 옹주는 “독살을 피하기 위해서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고종 황제의 죽음을 두고 당시 조선에서는 일제에 의한 독살이라는 설이 백성들 사이에서 떠돌았는데 덕혜 옹주 역시 이를 믿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덕혜 옹주는 불과 20살의 어린 나이에 대마도 백작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을 하게 됐다. 이후 정신적 스트레스가 커서 조현병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남편은 집에서 간병을 하다가 1946년 정신병원으로 그를 옮겼다.

덕혜 옹주는 1945년 해방이 되고 나서 고국으로 돌아오길 원했으나 돌아오지 못했고, 1962년이 되어서야 귀국할 수 있었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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