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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기획특집인물로 읽는 울산유사
[인물로 읽는 울산유사(270)]나림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옥고 치를때 우석이 도와 인연문화예술편 (14)이후락과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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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5  21: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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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락씨가 1976년 대한불교조계종 신도회 회장이 된 후 서울 조계사에서 서옹 종정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카 이동휘씨가 양복을 입고 우석 옆에 앉아 있다.

5·16 군사정권이 용공으로 지적한
교원노조의 고문이었던 이병주
10년형 선고 받고 2년7개월간 옥살이

평생 박정희 대통령 미워했지만
출옥 도운 이후락과는 친하게 지내
10대 총선서 우석 지지글 기사화도

이후락, 권좌에 물러난후
이병주 통해 자서전 발간 준비했지만
전두환 정권 출범하면서 계획 접어


최근 중앙언론들은 일제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생활을 보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수감된 뒤 박경리가 쓴 <토지>를 모두 읽고 추석 때는 나림(那林) 이병주가 쓴 <지리산>과 <산하>를 읽을 계획인 것으로 밝혀졌다.

공교롭게도 <지리산>과 <산하>는 울산과 인연이 깊다. <지리산>은 울산 출신 국회의원 정해영 비서를 지냈던 이태가 정 의원 비서가 되기 전 지리산 빨치산 경험이 토대가 되었다. <산하>에 나오는 주인공 이용범은 자유당 시절 태화강의 범서 다리를 건설했던 인물이다.

이태는 1960년 5대 총선 때는 울산으로 와 삼일여관에 정 의원 선거캠프를 차려 놓고 선거를 총지휘 해 울산사람들과 친분이 깊다. 1988년 <남부군> 출간으로 인기작가가 되었던 그는 1990년 당시 울산MBC에 근무했던 김잠출 기자를 중심으로 한 ‘울산독서회’ 초청으로 울산에 와 강연을 하기도 했다.

자유당 정권 시절 국회재정위원장을 지냈던 이용범은 범서 다리를 세우면서 당초 설계도에 있던 인도를 설치하지 않은 대신 이 공사에서 남은 돈을 자유당 선거비로 썼던 인물이다. 이 때문에 삼호교는 지금도 인도가 없어 차만 다닐 수 있다.

나림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옥중 생활을 해 평생 박 대통령을 미워했다. 나림은 5·16후 민주당 시절 교원노조 고문으로 있으면서 남북한 학생 교류를 주장해 용공사상을 고취시키고 반국가 단체인 북한괴뢰의 목적에 동조했다는 죄명으로 10년형을 선고 받고 2년7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이 때문에 나중에 나림이 발표했던 <그해 5월>과 <그를 버린 여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남로당 관계와 유신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박정희를 미워했던 나림이 박 대통령을 교주로 받들면서 박 대통령 아래서 대통령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던 우석 이후락과 친하게 지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우선 우석과 나람이 어떻게 친할 수 있었는지가 미스터리다. 이에 대해 우석을 오랫동안 모셨던 우석의 조카 이동휘(68)씨는 “나림이 옥중 생활을 할 때 그의 작가적 능력을 안 우석이 나림을 도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박대통령 시절 10년형을 받았던 나림이 2년7개월만 옥중 생활을 한 후 출소했던 이면에는 우석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이씨는 말한다. 나림이 옥중 생활을 하는 동안 우석은 박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었다.

나림은 출옥 후 언론계를 떠나 작가의 길을 걸었다. 나림이 얼마나 학구적이었나 하는 것은 그가 옥중 생활을 하는 동안 익힌 불어로 출옥 후 대학 교단에 섰다는데서 알 수 있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우석은 언론인들을 예우했다. 70년대 중반 우석은 나림과 대구매일 최석채 사장 등 유명 언론인을 울산으로 초빙해 박 대통령의 치적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 때 울산을 찾은 언론인들을 대접했던 인물이 당시 울산MBC 정택락 사장이었다. 언론인들을 공단으로 안내했던 사람은 최종두 기자였다. 최씨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나림이 그때 장생포를 구경하고 싶다고 해 모시고 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용잠도 보기를 원해 안내했다”면서 “나림 선생의 경우 울산에서 하룻밤을 자고 갔는데 우석의 당부가 있어 정 사장이 다른 언론인보다 예우를 특별히 했다”고 말했다.

울산 출신으로 나림과 가까웠던 인물이 있다. 울주군 삼남면 출신으로 경상일보 사장을 지냈던 신원호(78)씨는 국제신문 기자로 있을 때 나림과 친하게 지냈다. 신씨는 울산출신의 이강걸, 이기원씨와 함께 국제신문 견습 4기 출신이다. 청탁을 가리지 않고 술을 좋아했던 나림과 신씨는 부산의 광복동 일대를 돌면서 함께 술을 마시는 시간이 많았다. 신씨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나림 선생은 나이로 보나 언론 경력으로 보나 4기 견습생들 보다는 한참 위였지만 견습생들을 동생처럼 사랑해 주어 모두가 그를 따랐다”고 회상한다.

우석과 나림이 본격적으로 만난 것은 우석이 권좌에서 물러난 후다. 우석을 아는 사람들은 3공화국 비사를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우석이 왜 자서전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한다. 실제로 우석이 권좌에서 물러난 후 경기도 이천에 머물고 있을 때 우리나라 유수의 출판업자들이 이천까지 찾아가 자서전을 발간할 것을 권했다.

조카 이동휘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우석이 권좌에서 물러난 후 한 동안 자서전을 발간할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큰아버님이 1976년 대한불교조계종 신도회 회장이 되면서 아마 자서전을 생각하셨는지 나림 선생님을 자주 만났습니다. 이 때 만남은 대체로 큰아버님이 나림에게 전화를 해 이루어졌는데 둘이 만난 곳은 대중의 눈을 피하기 위해 주로 이태원동과 한강 변에 있는 자그마한 선술집이었습니다. 술집은 항상 나림이 정했는데 큰아버님과 함께 술집에 나가보면 나림 선생이 먼저와 문학소녀 몇 명과 함께 얘기를 하고 있었고 큰아버님이 나타나면 이들이 물러 난 후 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둘 사이 대화는 나림 선생이 먼저 질문을 하고 큰아버님이 답변을 하는 형식이었는데 특이하게도 나림 선생은 큰아버님이 얘기를 할 때도 전혀 메모를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큰아버님에게 자서전을 쓰려면 메모를 해야 하는데 나림이 왜 메모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큰아버님은 ‘나림이 기억력이 좋기 때문에 메모를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이외에도 우석이 자서전 준비를 한 흔적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1976년 우석은 신도회 회장이 된 후 조카 이동휘씨만 데리고 인도, 스리랑카, 네팔 등 불교성지 순례에 나선 적이 있다. 이씨에 따르면 우석은 무엇이든 일을 시작하면 심취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실제로 우석은 불교신도회 회장이 된 후 전국 불교조직망을 새로 만들고 불교계 원로들을 만나는 등 불교 활성화를 위해 전력을 쏟았다. 울산만 해도 우석이 신도회 회장으로 있을 때 정택락씨가 울산불교 신도회장이 되었고 총무인 오정룡씨는 해남사를 중심으로 청년법회를 자주 열었다. 이 때 청년들은 법회가 끝난 후 성남동 명다방에 모여 따로 토론을 하기도 했다.

“큰아버님과 제가 제일 먼저 들린 나라가 인도였는데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인도 직항 노선이 없어 홍콩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큰아버님이 저에게 녹음기와 테이프를 사주어 이후 여행을 하는 동안 밤이면 호텔에서 큰아버님이 하는 말씀을 녹음했습니다.”

이씨는 우석이 당시 녹음을 하면서 “남북협상을 하면서 김일성을 설득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북에서 돌아와 국민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더 어려웠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이씨는 “큰아버님이 주일 대사로 있을 때 우리나라에 흉년이 들어 일본쌀을 수입해야 했는데 이 때 후쿠다 수상을 만나 쌀 수입을 요청했더니 아무런 조건 없이 수락해 그때부터 후쿠다와 가까워졌다는 얘기도 했다” 고 말했다.

이씨가 당시 녹음한 파일은 13~14장이나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공화당 정권의 비사가 많았다. 그러나 이 비사는 결국 책으로 발간되지 못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후 우석이 10대 총선에 당선되어 다시 정치인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얼마 있지 않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면서 우석이 당초 계획을 접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나림이 우석을 얼마나 좋아했나 하는 것은 10대 총선에서 알 수 있다. 나림은 평소 정치 관련 기사를 쓰지 않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10대 총선에서 우석이 울산에서 출마했을 때 나림은 국제신문에 우석이 당선되어야 하는 이유를 기사화 했다. 이씨에 따르면 당시 우석 선거사무실은 이 글을 복사해 울산 전역에 돌렸는데 이 기사가 득표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씨는 한동안 이 테이프를 소중히 간직했지만 그동안 이사를 여러 번 하면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자서전은 자신을 미화하기 마련이지만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셨던 큰아버님은 역사의 증언자로 3공화국의 공과를 진실하게 서술했는데 이를 간직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것이 참으로 미안하고 아쉽다”고 말했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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