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이사품왕이 내물 마립간에게 말했다.

“동생은 같은 뿌리이고 같은 조상인 가야에 대해 그다지도 적대적인가?”

“적반하장도 유분수군. 가야야말로 같은 핏줄을 내팽개치고 왜와 가장 먼저 관계를 맺고 끊임없이 우리 신라를 침공하지 않았던가.”

과거에도 이번처럼 가야가 왜와 손잡고 신라를 침공해 금성을 포위한 적이 있었다. 왜군은 포위를 죄며 거듭 내물 마립간에게 항복을 요구했고, 성내 신하와 장수들은 왜에 항복하자는 주화파와 성 밖으로 나가 싸우자는 주전파로 나누어 대립하고 있었다.

당시 마립간은 단호하게 말했다.

“투항해서 사백년 사직을 왜에 넘겨줄 수도 없고, 지금 성 밖으로 나가 싸워도 승산이 없다. 하지만 왜가 배를 버리고 육지에 깊숙이 들어와 있으니 보급이 끊어져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농성을 하면서 왜를 칠 기회를 엿보자.”

마립간은 굳게 성문을 닫고 배후의 보급을 차단했다. 왜는 성을 포위해도 별 소득이 없자 닷새만에 스스로 철수했다. 마립간은 날랜 기병 이백 명을 동악으로 보내 철수하는 왜의 길목을 차단한 뒤 보병 천 명으로 철수하는 왜의 뒤를 쫓게 하고 독산에 용맹한 군사 오백 명을 매복시켰다. 양쪽에서 맹렬하게 공격을 가하자 왜는 견디지 못하고 독산으로 도망갔으나 그곳에 매복한 오백의 군사에게 걸려 몰살되었다. 지략으로 내물 마립간이 왜를 물리친 전투였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규모 면에서 과거의 작은 전투와 양상이 전혀 달랐다. 가야의 왕 이사품이 직접 가야와 왜의 연합군 삼 만을 이끌고 쳐들어와 신라 전토를 점령한 것이다. 연합군 뒤에는 백제 아신왕의 십만 군의 지원이 있었다. 마립간의 지략이나 신라만의 군사력만으로 막을 수 없는 대규모 전쟁이었다.

이사품왕이 마립간을 무릎 꿇리고 말했다.

“마립간, 너도 처음에는 제법 영명한 군주가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몇 년 전 왜군을 물리친 뒤로 자고에 빠져 한 자매를 같은 침상에 끌어들이는 패륜을 범하는가 하면, 어진 신하들을 멀리하고 간신을 곁에 두었다. 민심은 피폐해져 나라는 도탄에 빠졌는데 백성을 착취해 창고에 쌀과 어육과 보물을 가득 채워놓는데 급급했다.”

이사품왕도 마립간의 패덕을 단죄할 만한 도덕군자가 전혀 아니었다. 단지 승자의 강변일 뿐이고 패자는 승자가 씨부리는대로 죄를 뒤집어쓰게 마련이다.

“내가 오늘 네 목을 베어 이번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임을 만천하에 알리겠다.”

이사품왕이 칼을 빼어 목을 치려는 순간, 가야의 전령이 달려와 다급하게 말했다.

“광개토군이 북문까지 쳐들어왔습니다. 지금 당장 피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북쪽에서는 고구려군이 물밀 듯이 쳐내려오고 남서쪽으로는 신라의 계림장군이 장팔사모를 들고 올라오고 있었다. 달구벌쯤에 주둔하고 있을 고구려군이 벌써 반월성 문밖에 있을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우리말 어원연구

금성. 지금의 경주.

씨부리다. 【S】svuri(스부리). 【E】speak. 【L】salvus(살부스). ‘씨부리다’는 말하다, 소리하다의 사투리다. 사투리에 우리말의 어원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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