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재판 과정의 부부·친족간 다툼
아름다웠던 만남의 잔인한 끝 보여줘
가정법원 후견복지제도 도움될 수도

▲ 장래아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눈물이 흘러 이별인걸 알았어. 힘없이 돌아서던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필자가 좋아하는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이란 노래의 첫 소절이다. ‘응답하라 1997’을 본 분들이라면 이 노래를 들으며 윤제와 준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장면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응칠’을 시청한 후 필자는 윤제와 준희가 이별하던 그날처럼, 비만 오면 이 노래가 생각난다. 사실 노래제목은 ‘아름다운 이별’이지만 이별이 아름답기란 참으로 어려운 듯하다. 필자도 어릴적 부모를 따라 이사를 다니며 친한 친구들과 이별하기도 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보내기도 하면서 조금씩 이별하는 법을 배웠지만, 솔직히 필자에게도 이별은 결코 아름답진 않았다.

만남에는 항상 이별이 따르고, 이별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아프다. 하지만 이별의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덜 힘들고 덜 아프려면 제대로 이별해야 한다. 그런데 제대로 이별하지 못해 헤어지자고 말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또는 그 사람의 가족을 폭행, 납치하고 심지어 살해하기까지 한다.

또 필자가 담당하는 가사재판의 당사자들을 보면 이별의 과정이 얼마나 힘겹고 아픈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가사사건의 당사자들은 재판과정에서 엄청난 심리적·정신적 고통을 받게 되고, 특히 부모의 이별로 인하여 자녀들이 겪는 아픔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혼재판과정에서 당사자들은 상대방의 유책사유를 밝히기 위해 혼인생활 중에 있었던 모든 나쁜 일들을 상기시키고, 상대방을 헐뜯는다. 또한 재산분할을 위해 당사자들의 모든 재산이 공개되며, 상대방의 재산을 탐지하기 위해 각종 수단과 방법이 동원된다. 사실 ‘쿨’하게 헤어질 수 있었다면 이혼재판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함께해서 행복할 수 없다면, 함께하는 그 자체가 고통이라면 이별이 정답일 수 있다. 하지만 이별에도 예의는 있는 법이다. 비록 지금은 이별하지만 혼인생활 중에 상대방이 겪었을 고통을 서로 이해하고 그동안 고마웠음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부부는 비록 헤어지지만 그 사이에 아이가 있다면 결코 지금의 이별이 마지막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아름답게 이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당사자들은 이혼 후에 아이가 상대방을 만나게 되면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이에게는 엄마도 아빠도 형제자매도 그 밖의 친척들도 다 필요하다. 부부는 이혼하더라도 적어도 아이에게는 온전한 가족이 되어 주어야 한다.

가정법원은 이혼하는 부부들을 위한 많은 후견복지적 제도들을 운영하고 있다. 이혼재판의 기초자료를 조사하는 조사관제도, 각종 심리상담 및 교육, 자녀양육안내, 면접교섭센터 등 이혼과정에서 겪는 당사자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혹시라도 이혼을 겪게 되면 가정법원의 이러한 제도들을 활용할 만하다.

또 필자가 담당하는 가사재판 중에는 가족과 사별한 후 상속재산을 두고 가족, 친족들과 다툼을 벌이는 사건도 많다. 이 또한 가족과의 이별이 아름답지 못한 경우라 하겠다. 대부분의 경우 본인이 피상속인으로부터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상대방이 받는 것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피상속인의 재산이고, 피상속인의 마음대로 처분한 것이 잘못도 아닌데 피상속인이 사망하고 나면 자신에게 불리한 모든 재산처분을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그래도 가족, 친족인데 피상속인과의 이별을 아름답게 아니 적어도 예의바르게 맞이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아직 필자가 가사재판을 담당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필자가 담당하는 가사재판의 당사자들에게도 김건모의 노래처럼 ‘아름다운 이별’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장래아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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