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목민심서 등에 담긴
옛 조상의 천재지변 관련 기록들은
오늘날도 유용한 재난관리 빅데이터

▲ 심재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원장

1990년대 우리나라는 큰 규모의 홍수가 자주 일어났었고, 한창 나이였던 필자는 열심히 피해현장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당시 방문했던 피해 지역 중 상당히 많은 지역이 홍수 피해와 관련성이 높은 지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파주시 문산읍과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 그리고 경기도 평택시 등이 그 예이다. 1996년 이후 3년 연속 물난리를 겪었던 문산읍(汶山邑)의 문(汶)은 물가, 냇가의 이름을 의미하는 글자로, 평야지역에서 물이 많으면 모이는 곳을 의미했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의 집결지역으로 지형상 홍수에 취약한 지역임에도 사람들과 장비들이 모이게 되면서 조성된 지역이었다. 1999년 수해 지역인 수택동의 경우는 지명 자체가 물에 잠긴다는 뜻의 수택(水澤)이었고, 평택(平澤) 역시 평평한 지역에 못을 이룬다는 뜻으로 지명 자체에 홍수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고 실제로도 피해가 많았던 지역이다.

문제는 전쟁 때문이던, 경제활동 때문이던 인위적으로 개발이 이루어짐에 따라 이 지역에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이나 자산들이 아주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반복되는 수해 이후 각종 홍수저감 시설이 설치되면서 홍수 발생횟수는 줄어들었지만 계획보다 더 큰 비가 온다면 그 위험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위험성을 사전에 파악하고 가급적 자연적인 형태에서 도시나 시설들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배움을 얻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후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전국의 옛 지명이 자연재해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하는 시범적 연구를 해본 결과 그 지역의 바람과 비, 물, 지형 등 자연특성과 지명 간에는 관련성이 높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옛 조상의 지혜를 다시 정리하려는 연구 과제를 관계부처에 제출하기도 했지만 당시 선진 외국의 신기술을 중심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심의 결과에 안타깝게도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게 된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쉽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록유산 중의 하나인 조선왕조실록에는 홍수, 가뭄, 지진 등 재난과 관련된 다양한 기록들이 육하원칙에 따라 잘 기술돼 있고, 이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재난유형과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목민심서(牧民心書)의 진황육조(賑荒六條)에는 이재민을 구호하는 합리적 방법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등 조상들이 남긴 기록의 곳곳에 현대의 재난관리 시스템과 견줄 만한 내용들이 기술돼 있다.

굳이 최근의 용어로 말하자면 이와 같은 각종 옛 기록들이 바로 빅데이터이다. 과거 선조들이 살면서 이름매긴 지역의 지명과 역사와 지혜가 또한 빅데이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인공지능과 새로운 센서 개발만을 고집하는 현재의 우리가 반성해봐야 할 대목이다. 영국의 역사가 E.H. Carr의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 상호작용의 과정인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처럼 우리는 과거의 경험과 지혜가 미래를 결정할 우리에게 중요한 자료로 인지되고 보존·연구되어야 한다.

중학교 1학년 첫 한문시간에 배웠고 지금도 기억나는 고사성어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공자의 논어 위정편(爲政篇)의 원문을 해석하면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는 뜻이다. 옛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익힌다는 표현은 과거의 사실을 단순한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깨닫는 다는 뜻이고,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어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 줄 수 있는 수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되새겨지는 말이다. 사실 새로운 기술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데 마음이 급한 젊은이들에게 조상이나 선배들의 경험이 더욱 소중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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