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혜 울산과학대학교 식품영양과 교수 울산북구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장

지난 주말에는 날씨가 선선해지기에 계절 옷도 바꿔 걸고, 안 입는 옷은 버리려는 마음으로 옷장을 열었다. 매번 옷장을 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입을 옷은 없고, 왜 그리 옷들은 복잡하게 꽉 들어차 있는지. 하나, 둘 잘 입지 않는 것부터 꺼냈다. 지난번 정리할 때도 버릴까 말까 고민이 되던 옷은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미련없이 박스에 넣었다.

내가 입지 않아도 누군가는 입을 수 있도록 가지런히 차곡차곡 쌓아 종이상자 세 개를 채웠다. 정리는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요즘 정리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정리 전문가라는 직업도 생겼다. 어떤 사람이 우울증으로 삶의 의욕이 없었는데 정리전문가의 도움으로 집안을 정리하고 난 뒤 살고 싶어졌다는 이야기도 정리가 그만큼 삶에 동기부여를 준 것이라 생각된다. 정리를 못하는 이유는 미련과 집착이 커 판단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이로써 자신의 주변을 복잡하고 어지럽게 만드는 것이다. 정리도 판단이 중요하다.

정리는 ‘무엇을 버릴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정리는 물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과의 단체소속이나 친목모임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으며 나는 그들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리하며 유지하고 있는가?

삶이 빡빡해지면서 우리는 각자의 필요에 의해 사람을 만나고 필요성이 다하면 소원해지는 관계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된다. 불특정 다수의 의미없는 관계, 이익추구나 각자의 목적만을 얻기 위해 만나는 다수의 사람들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만의 목적이 있고, 바라는 것만 있는 사람은 만나더라도 늘 힘이 들고 불편하다. 마음을 열 수도 없으며 더 가까이 갈 수 없고 신뢰도 결코 생기지 않는다. 정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 간의 관계는 물건과 다르기 때문에 버리고 치우는 정리가 아니라 올바른 관계형성을 위한 서로의 노력과 관심을 통한 정립이 필요하다. 우리는 늘 곁에 있는 친구에 대한 감사함을 잊기도 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지하고 응원하는 고마운 사람을 잊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생각 난 김에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항상 변함없이 묵묵히 그 자리에서 신뢰하고 지지해 주어서 고맙다’고. 익숙하고 편한 사이라 한번도 고맙다고 말해 본 적이 없었는데 전하고 나니 친구에게 바로 전화가 왔고 즐거운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하던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 화가 날 때, 언제나 전화를 걸어 내 이야기를 편히 풀어 놓을 수 있는 그가 있어서 참 좋다.

소중한 이들이 있어 힘이 되고 행복하며 그들의 염려와 사랑이 삶을 더 밝게 만들어 준다. 수없이 많은 가벼운 관계들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꼭 지키고 남겨야 할 소중한 사람인 것이다. 오늘은 내 주변에 남겨둔 사람들이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보고 그들에게 따뜻한 가을인사를 전해야겠다.

정영혜 울산과학대학교 식품영양과 교수 울산북구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