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
화해 통해 조속히 과거사 정리
자주국가 건설 위해 힘 모아야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지난달 23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트에서는 남아공의 전 대통령이자 화해와 용서의 인권지도자로 추앙받는 ‘넬슨 만델라’의 추모 걷기대회가 열렸다. 이 행사는 국제원로자문그룹인 디엘더스(TheElders)가 주도했는데 한국 사람으로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참석했다. ‘디 엘더스’는 ‘넬슨 만델라’의 89번째 생일을 맞아 국제평화를 촉진하고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범했다. 투투 주교,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주도하고 있다.

‘화해와 용서’는 말로는 쉽지만 행동으로 옮겨 실천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사로운 일에도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평생을 안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권력의 압제로 평생의 옥고를 치른 사람이 가해 세력을 용서하고 화해한다는 것은 더 높은 공익적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만델라’는 남아공 국민당의 흑백인종차별정책인 아프르트헤이트에 맞서 처음에는 ‘민족회의’를 조직, 간디와 같은 비폭력불복종 운동을 전개했으나, 그 한계를 절감하고 ‘민족의 창’이라는 무장조직을 통한 무력 투쟁을 하다 체포돼 흑인 정치범 수용소인 ‘로벤섬’에서 27년의 옥고를 치르게 된다. 만델라의 석방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력과 동지들의 지속적인 투쟁으로 1990년 석방됐고 뒤이은 총선에서 만델라의 ‘민족회의’가 승리, 대통령에 추대된다.

만델라는 대통령취임식에 자신의 교도소 생활을 직접 감독했던 백인 간수 세 사람을 초대해 자신의 수감생활을 도와준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사형을 구형한 백인 검사와 인종차별정책을 이끌었던 전 대통령의 부인들을 대통령 궁으로 초대해 식사를 했다. 백인 우월의 상징이었던 어린양이 그려진 초록색 럭비유니폼을 입고 남아공과 뉴질랜드의 럭비월드컵 결승전에 나타나 백인 관중들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인종차별정책을 가장 강하게 밀어 부친 전 총리의 부인을 문병하기 위해 그의 집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국가 권력에 의한 인종차별은 시대적 상황 혹은 국가 시스템의 문제이지 단순히 실무를 집행한 개개인의 행위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시각에서 출발했다.

‘우리 남아공의 국민은 과거의 불의를 인식하고, 자유와 정의를 갈망한 이들을 기리며, 우리나라를 건설하고 발전시킨 이들을 존중하며…’라고 새 헌법 전문에 명기해, 자유와 정의를 위한 흑인들의 해방 투쟁을 인정하는 한편, 나라를 경제적으로 발전시킨 백인들의 공헌을 존중함으로써 남아공의 흑인과 백인 모두의 나라임을 확고히 했다. 역사의 발전을 위해서는 과거의 공·과를 정확히 밝혀야 하겠지만, 희생자가 가해자에게 단죄하는 방식으로는 보복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진실을 밝히되 용서하자’고 외치며 ‘진실화해위원회’를 출범시켜 난마처럼 얽힌 과거사 정리에 매진했다. 이러한 ‘만델라’의 태도에 흑인들은 많은 불만을 나타내었으나 차츰 내란위기의 남아공이 안정되어 가자 그가 연설을 할 때마다 흑백 군중들은 ‘마디바(존경하는 어른)’를 연호했다.

현재 우리의 상황이 남아공과 똑 같지는 않지만 난마처럼 얽힌 과거사와 싸우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라 할 수 있다. 그간 ‘역사바로세우기’ ‘의문사위원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등을 통해 나름 과거사를 정리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지만,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과거사의 앙금이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작금의 혼란스러운 북한 핵미사일 사태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은 우리는 여전히 주변 강대국인 4마리 늑대들의 영향력을 뿌리칠만한 힘이 없다는 사실이다. 힘없는 씨름 선수가 온갖 잔재주를 부려 본들 밀어치기 한 방으로 쓰러지는 것이 씨름판의 현실이다.

큰 화해를 통해 과거사를 조속히 정리하고 국력이 뒷받침되는 자주국가 건설에 절치부심(切齒腐心) 매진할 시점이다. ‘화해는 적당한 타협이 아니라 과거의 정의롭지 못했던 유산을 고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마디바 ‘만델라’의 인식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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