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경관을 완성하다-울산의 정자
(借景:바깥의 경치를 빌려서 본다)

▲ 태화루

고려·조선을 거치며 만들어져
유학자들의 교류·세결집 외에도
학문·정치적 의미가 담겨있어
특히 경상도 지역에 많이 잔존

정자, 팔경·구곡문화 붐 이뤄
태화루·작천정·집청정·이휴정 등
울산에도 다양한 종류 정자 존재
인근 지역으로 누정여행도 추천

신라 소지왕 10년에 왕이 천천정(天泉亭)이라는 정자로 행차할 때 쥐와 까마귀가 나타났다. 신하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하였는데, 어느 연못가에서 돼지가 싸우는 것을 구경하고 있자니 연못 속에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주고 사라졌다. 봉투 겉면에는 ‘개견이인사, 불견일인사’(開見二人死 不見一人死))라고 적혀 있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사금갑(射琴匣), 즉 ‘궁중에 있는 거문고 상자를 쏘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이 설화는 경주 통일전 옆, 연꽃이 아름답기로 소문 난 서출지(書出池)에 관한 설화다. 그 이야기 중에 나오는 천천정이 바로 삼국유사에 기록된 최초의 정자라고 한다.

▲ 반구마을 집청정

산자수명(山紫水明)이라 하니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많은 정자가 세워지는데 보통 정자라 함은 2층의 누각과 단층의 정자를 합하여 누정이라 하며 큰 의미의 정자이다.

최근에는 정자 전성시대다. 전통적 정자 외에도 동네 입구에 만들어져 이야기를 나누는 모정의 역할도 하고 휴식처로서의 역할을 하는 기능적인 정자 건축이 활발하다.

하지만 옛부터 전통적인 정자는 고려, 조선을 거치며 시대를 품으며 만들어졌다.

특히 성리학적 이념으로 무장한 조선의 학자들에게 정자문화란 자연 속에서의 학문탐구와 유림들과의 교류, 자손들을 위한 강학기능, 문화의 산실로서 유학자들의 세의 결집과 학문적, 정치적 은거와도 관련이 깊은 중요한 장소였다.

▲ 남산자락의 이휴정

그리하여 정자는 팔경 혹은 구곡문화가 붐을 이루었다. 구곡문화는 송나라 주자의 무이구곡을 차용해 중앙정치에서 물러나 경치가 수려한 계곡 구비구비 아홉 골짜기를 지정해 이름을 붙이고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정자를 지은 뒤 제자를 기르며 자신의 이름을 건 원림을 경영하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유학자의 학풍을 이어가는 세력권이었다고 볼 수 있다. ‘화양구곡’ ‘죽계구곡’ 등이 유명하며 울산에도 3개의 구곡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누정은 지어진 기능에 따라 동헌, 향교, 서원 등 관아와 사찰의 부속 건물로, 별장의 개념으로, 가문의 재실로, 서당의 목적으로 지어졌다.

▲ 작괘천의 작천정

울산의 대표적 누정으로는 신라시대 사찰의 종루로 건립돼 조선시대 관에 딸린 관루로 쓰이다 멸실 한 뒤 최근 복원한 태화루가 있다. 또 울산의 자랑거리 영남알프스의 한 봉우리인 간월산에서 발원한 작괘천에 작천정(酌川亭)이 있다. 작천정은 시문학의 성지로서 계곡의 안팎에 새겨져있는 수많은 시문과 각문으로도 유명하다. 울산문화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음을 보여주며 좋은 계곡에 정자가 없음을 안타까이 여긴 지역민들에 의해 1902년 건립됐다.

반계구곡에는 물과 산의 기운이 모이는 곳에 정자 집청정(集淸亭)이 있다. 반구대암각화라는 걸출한 선사시대 유적을 보듬고 있으며 대곡천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하고 있다. 18세기 초엽에 경주 최씨 가문의 최신기가 지었다. 맞은편 절벽은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등장하며 완화계, 동천석실 등의 글씨와 그림에도 등장하는 반구대다. 그 곳이 선계임을 잘 보여준다. 400여 수가 넘는 시문이 남아있고, 사연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선유대 바둑바위 등 너럭바위들을 품었던 곳으로, 도로공사로 입구가 조금 변형되었지만 마루에서 마시는 차 한잔은 아직도 일품이라 할 수 있다.

또다른 울산의 구곡, 백련구곡이 자리한 지금의 대곡댐 수몰 지구에는 지역 선비인 최남복 선생이 건립한 백련서사 혹은 수옥정라는 아름다운 정자가 있었다. 원래의 정자가 대곡댐으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지금은 인근의 한 한방요양시설로 옮겨졌다.

역사서 <부북일기>는 조선 선조 때 관리였던 박계숙, 박취문 부자가 함경도로 발령받은 후 부임과정과 부임지에서의 일들을 기록한 특별한 책이다. 아들 박취문이 17세기 건립했던 정자가 있는데 멸실되었던 것을 2011년 복원한 것이 바로 만회정(滿悔亭)이다. 귀향 후 상념에 잠기기에 좋은 장소인 태화강대공원 내의 내오산에 자리하며 태화강의 풍치와 남산12봉을 마주할 수 있는 휴식의 장소이다.

남산자락의 이휴정(二休亭)은 1662년에 건립됐다. 지금은 남산 아래 건물사이에 끼어 잘 보이지 않지만 예전엔 태화강이 한눈에 조망되었을 것이다. 2003년 큰 화재로 비교적 최근에 다시 새로 지어졌지만 한때 태화루의 현판이 있었던 유서 깊은 정자다. 이외에도 울산에는 많은 정자가 건립, 중건되었고 근대 읍지인 <흥려승람>에도 30여 곳이나 기록되어 있으며 제천정, 송애정사, 모은정 등 역사와 함께하는 20여 곳의 정자가 있다.

누정문화는 특별히 유학의 학맥이 강했던 경북, 경남 일대에 많이 남아 있다. 누정을 찾아 다니는 한 답사팀이 말하길 정자는 지금의 문화관, 문화센터라고도 한다.

▲ 박혜정 울산시 문화관광해설사

가을이 저무는 이 계절에 울산의 누정을 찾아 옷깃을 여미며 역사적 의미와 정취를 즐기는 여행은 어떨까? 가까운 울산의 정자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가까운 이웃 도시의 정자를 다녀오는 것도 좋겠다. 앞서 언급된 경주 서출지에는 반쯤 떠 있는 형상으로 요산요수를 뜻하는 이요당(二樂堂)이 있다. 경주 강동에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이름을 따온 귀래정(歸來亭)이 있다. 육각형 형태의 희귀한 정자다. 계곡 누정의 절정을 보여주는 독락당의 계정(溪亭)은 이언적이 정계을 물러났을 때 은거했던 곳이다. 이팝나무 군락으로 유명한 밀양의 위양지에는 섬 위에 세워진 완재정(宛在亭)이 있다. 정자의 그림자가 물 속에 비춰 멋스러운 풍경을 연출한다. 누정의 고장으로 알려진 경남 함양의 동호정, 화림정계곡의 정자, 담양의 소쇄원, 안동의 만휴정 등도 있다.

전통건축의 골자는 차경(借景)이라 한다. ‘바깥의 경치를 빌려서 본다’는 뜻이다. 그럼으로 해서 누정은 그 자체가 중심이 아닌 정경의 일부이자 그 지역의 풍광을 핵심적으로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정자를 포함한 건축은 시대의 정치, 철학, 삶의 방식, 문화적 배경을 담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라 평한다. 우리의 전통누정을 찾아 자연 속에서 이루고자 했던 당시 선비들의 시대정신을 느껴보자.

내려다보면 땅이, 올려다보면 하늘이, 그 가운데 정자가 있으니, 명아주 지팡이 삼아 풍월산천 속에 한 백년 살고자 한다

­ 송순, <면앙정기> 중에서.

박혜정 울산시 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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