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편 (18)원강서원 추향제

▲ 충의공 엄흥도 후손들이 지난 11월6일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 있는 원강서원에서 울산 유일의 창홀 입선자인 엄주환씨의 집례에 따라 추향제를 올리고 있다.

정조 23년 온산면 원강마을에 건립
엄공의 17대 손 엄주환씨 집례로
엄창섭·이채익 매형·허언욱 장인 등
울산 엄씨 종친회 대를 이어 향사
귀중한 유교문화 ‘전국 재실 향사’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노력
‘조선충신’ 문구 새겨진 엄공 비석
울산 문화재자료 제10호로 지정 등
충효정신 알리는 체험장으로 계승

지난 11월6일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원강서원에서는 조선 충신 충의공 엄흥도를 기리는 추향제가 거행되었다. 충의공은 영월에서 단종이 붕어한 후 시신이 강가에 버려져 있을 때 죽음을 무릅쓰고 이를 거두어 염장했다.

이날 추향제는 두 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는 문중 후손들이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효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고 두 번째는 향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홀기에 따라 거행되어 문화행사의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홀기는 혼례나 제례 때 의식 순서를 적은 글이다.

충효도시로 일컬어지는 울산에는 재실이 많다. 울주군만 해도 각 읍면에 평균 20개가 넘는 재실이 있어 모두 200여개가 넘는다.

그러나 이들 중 울산시 차원에서 춘추향제를 올리는 치산서원을 제외하고는 문중 후손들이 원강서원처럼 많이 모여 향사를 지내는 재실이 많지 않다.

울산이 공업도시가 된 후에는 유교문화에도 큰 변화가 왔다. 울주군만 해도 공단이 들어섬으로 없어진 재실들이 많고 재실은 있지만 후손들의 이해관계로 향사가 아예 사라진 재실들도 있다.

울주문화원은 최근들어 이처럼 사라지는 우리의 유교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군내 있는 재실을 조사해 <원사정재>를 만들어 문중은 물론이고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 있는 기관과 개인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그러나 <원사정재>를 만들기 위해 문중 사람들을 만나 보면 중시조와 입향조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는 자신이 문중의 어느 파에 속하는지 몇 대 손인지를 모르는 후손들이 많다. 문중 재산이 많은 일부 후손들은 재산을 놓고 소송을 벌여 아예 남보다 못한 인간관계를 갖고 있는 문중도 있다.

그러나 원강서원은 정조 23년(1799) 온산면 대정리 원강마을에 건립된 이래 후손들이 매년 향사를 올리고 있다.

원강서원 향사는 고종이 위패를 하사한 후 영남 유림들이 나서 향사를 올리기 때문에 향사 자체가 우리나라 전통 유교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행사다.

고종은 원강서원에 사액을 내리면서 ‘불천위’ 은전과 함께 재문과 제사 때 사용할 물목 그리고 제물이 든 단자까지 보내었다. ‘불천위’는 후손들이 살아 있는 한 제사가 끊어져서는 안된다는 명령이다.

사액을 내릴 때 임금은 직접 축문을 써 내리거나 벼슬을 준다. 충의공은 증직 참판이 된 후 나중에는 판서가 되었다. 제사에 필요한 제수도 직접 내리고 때로는 돈을 주기도 한다.

향사의 위상도 달라져 서울 인근에는 향사 때 직접 임금이 참석도 한다. 지방의 경우 감사가 초헌관이 되어 향사를 올린다. 울산의 경우 옛날에는 감사가 머물렀던 지역이 멀었기 때문에 대신 울산현감이 초헌관을 대신했다.

이 보다 큰 가문의 영광은 직계 후손이 ‘장손’ 칭호를 갖는 것이다. 요즘은 너나 구분 없이 시조의 직계 후손을 ‘장손’으로 부르지만 옛날에는 사액을 받은 후손만 장손으로 불렀고 직계 후손이라도 사액을 받지 못한 문중에서는 ‘주손’으로 불리었다.

우리나라 족보를 만들기 위해 매년 전국의 큰 향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는 대구 대보사의 박종우(69) 상무는 “향사의 위상에서 보면 울산의 원강서원은 우리나라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높고 자랑스러운 인물을 모시는데 최근 향사에 가보면 울산사람들은 물론이고 문중 사람들 중에도 이를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아쉬울 때가 많았다”고 토로한다.

이번 향사에도 문중에서 많은 인물들이 참석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완구 전 시장은 이 향사의 고정 손님이었다. 그는 엄씨 외손이기 때문에 시장으로 있을 때는 이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엄창섭 전 울주군수도 참석했고 이채익 국회의원의 매형인 엄운영도 아헌관으로 집례를 했다. 이들 외에도 허언욱 부시장의 장인 엄지영이 예축을 했다. 규모로 보면 추향제는 기제사로 춘향제에 비해 크지 않고 모이는 사람들도 적다. 그러나 이날 원강서원 추향제에는 200여 명의 문중 사람들이 모여 엄 공에 대한 후손들의 끊이지 않는 효를 보여주었다.

향사는 엄공의 17대 손 엄주환씨의 집례로 질서 있게 이루어졌다. 맨 처음 충의공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상절당에서 고종이 하사한 위패를 드러내는 일로부터 시작해 이곳에서 정식으로 일차 제사를 마친 후 나머지 행사는 여수당으로 옮겨 치렀다.

이날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례한 엄씨는 2015년 성균관 유도회 주최로 경주향교에서 열린 ‘전국창홀대회’에 응시해 입선했다. 창홀(唱忽)은 제례의식에서 사용하는 홀기를 불러주는 것을 말하며, 대개 곡조를 넣어 부른다. 현재 구강서원 장의로 있는 그는 성균관 임원 5년과 구강서원 보존회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이 대회에 나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2015년 대회에는 울산에서만 50여명이 응시했으나 혼자 입선했다. 그는 향사와 관련된 홀기에 대해 “홀기가 지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음향의 고저가 중요하다”면서 “홀기가 물 흐르듯 부드러워야 향사 자체가 차질 없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향사가 열리기 전 향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예행연습을 하는 재실들도 있다”고 말한다.

엄창섭 전 군수도 “최근 우리나라가 전국 재실의 향사를 중심으로 재실을 귀중한 유교문화 자산으로 보고 이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면서 “원강서원이 울산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강서원에는 위패를 비롯한 고종이 하사한 단자와 재문 등 자랑할 것이 많다. 그러나 엄씨 문중 사람들이 이 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현재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0호로 지정된 원강서원 비다.

비는 현재 서원 앞 비각에 있다. 1820년 세워진 이 비는 강화도 오석으로 제작되어 온산읍 대정마을까지 뱃길로 운송되었다. 비신은 사각 받침돌 위에 지붕돌을 올렸다. 비문은 조진관 홍문관제학이 지었고 글씨는 이익희 동부승지가 썼다. 앞면에 새긴 비의 명칭은 당대의 명필 이조원 이조판서의 글씨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

이 비에서 가장 돋보이는 글이 비석 맨 위에 있는 ‘조선 충신’의 글자다. 엄 공의 17대 손인 엄주호 울주문화원 이사는 “조선 시대 많은 충신이 났지만 비문에 이처럼 ‘조선충신’이라는 글을 새겨 놓은 비석은 엄공 뿐이다”면서 “이 비를 통해 당시 조정에서 엄공의 충의사상을 얼마나 높이 샀는지를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비석이 세워진 후 엄공은 순조 33년(1833) 공조참판에서 공조판서로 증직되었다. 또 고종 33년(1896)에는 충의 시호가 내려졌고 광무 4년(1900)에는 ‘불천위’ 위패를 받게 되었다.

이런 영광은 현재 엄공의 산소가 있는 영월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영월에는 매년 향사를 올리는 창절사와 배식단이 있다. 창절사에는 단종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사육신을 모시고 배식단에는 3명의 선비에게 향사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엄공은 비록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죽음보다 더한 충성으로 단종을 섬겼다고 해 배식단에 향사를 올리는 3명의 선비 중 한 명으로 예우받고 있다.

▲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매년 원강서원에서 향사를 올리고 있는 엄씨 울산종친회가 앞으로 추진할 계획이 있다. 엄주호 이사는 “충의공의 충효정신은 영조 임금이 말한 것처럼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는’ 존경을 받을 정신이지만 지금까지는 문중 향사에 매달리느라 정작 엄공의 충효정신을 널리 알리지는 못했다”면서 “앞으로는 충의공의 충의정신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특히 원강서원을 울산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문화체험장으로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충효도시 울산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엄 이사는 또 “원강서원이 갖고 있는 여수당 강당은 청소년들이 학습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갖추고 있고 서원 내에 있는 엄공의 비각과 비, 안내문 그리고 각종 건축물을 통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엄공의 충효정신을 익힐 수 있어 이들 시설을 잘 활용하면 학생들에게 효과적인 충효의 체험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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