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은 인생에 있어 작은 변곡점
연기로 평상심 잃지 말고 버텨야
불안감 털고 좋은 결과 이끌어내

▲ 배상문 위앤장탑내과 원장·내과전문의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었다. 포항 지진 때문이다. 수험생 아들이 무척 허탈해 했다. 공부 끝났다고 책을 버린 친구도 있다고 한다. 이런 때일수록 평상심을 잃지 말고 정신력으로 버텨야한다고 했다. 세월호를 겪었기에 학생들의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포항, 울산, 부산 근처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해 있다. 반복되는 지진에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필자야 오십년 넘게 살았으니 죽어도 크게 아쉬울 것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걱정이다. 서울에서 살면 좋겠다 싶어도 북한 방사포의 사정거리 안이다.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을 생각해 보아도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

수능을 앞두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30여년 전 필자는 학력고사를 통해 대학에 갔다. 그전 선배들은 예비고사, 본고사가 있었다. 더 옛날에는 과거를 보러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갔다. 추풍령과 죽령도 있었지만 유독 문경새재를 고집했다고 한다. 추풍령을 넘으면 낙엽처럼 과거에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댓잎에 쭉 미끄러진다고 했다. 수험생 부모로 일 년을 보내면서 어서 이 시간이 갔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세상 일이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나비효과’란 말이 있다.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을 뜻하는 말이다. 흔히 북경의 나비 날개 짓이 캘리포니아해안에 폭풍을 만들어 낸다는 말로 요약된다.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발견한 것인데 기상예측을 위해 12개의 미분방정식으로 풀었다. 컴퓨터에 해수표면온도를 0.000127도 줄여서 대입했는데 계산이 진행되면서 미풍이 폭풍으로 바뀐 것이다. 털끝만큼의 차이가 천지차이로 벌어지는 것이다.

5공 시절 많은 대학생들이 데모를 했다. 미워하던 군사독재정권이었지만 서울의 명문대학에 지방학생들이 많았다. 과외 금지 조치를 비롯한 교육 정책이 가난한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하면 명문대에 진학할 여지를 주였던 것이다.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에도 서울 친척들의 말을 들어보면 교육열에 있어서 서울과 지방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서울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에 익숙해 있다 보니 대학입시에 있어서도 유리한 조건으로 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학생이 많을 수 있었던 것은 지금보다 경쟁이 덜 치열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경쟁적 삶이 좋을지 아니면 유유자적한 삶이 나을지는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다. 갈릴레오는 질량이 다른 물체, 가령 나무토막과 쇠뭉치를 동시에 떨어뜨리면 둘 다 같은 시간에 땅에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명한 피사의 사탑에서의 실험이다. 실제로는 같이 떨어지지 않는다. 낙하의 실제 조건인 공기 저항의 차이 때문에 가벼운게 늦게 떨어진다. 그래서 갈릴레오는 공기의 저항이 없다는 가정(진공) 하에서 자유낙하의 법칙을 서술했다. 그러나 실제 떨어지는 모든 물체는 그것이 대면하는 조건에 따라 다르게 떨어진다. 심지어 매질의 저항이 크면 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모든 물체는 그것이 만나는 조건에 따라 다른 속도로 떨어지는 것이다.

같은 감기약도 어떤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을 수 있다. 때로는 해가 되기도 한다. 골프도 스크린과 필드는 다르다. 스크린 싱글이 필드에서는 백돌이가 되기도 한다. 많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페어웨이로 날아가던 공이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OB(아웃 오브 바운드)가 되기도 한다. OB지역에 떨어진 공이 나무나 돌에 맞고 페어웨이로 들어오기도 한다. 그린의 잔디가 역결이냐 순결이냐에 따라 홀 앞에 공이 서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한다.

서양의 철학과 과학은 분석적 인과성을 추구한다. 논리적 혹은 시간적으로 선행하는 독립변수(X)와 뒤에 오는 종속변수(Y)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원인에 따른 동일한 결과를 추론한다. 하지만 세상은 진공 상태가 아니다. 아들은 지난 일년 간 최선을 다했다. 그것만으로 고맙고 자랑스럽다.

혹시 바람이 불어 OB가 나더라도 다음 홀이 있다. 수능은 인생에 있어서 작은 변곡점에 불과하다.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지금은 나비의 날개 짓에 불과하지만 거대한 폭풍이 되리라 믿는다.

배상문 위앤장탑내과 원장·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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