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이르게 찾아온 여름은 땡볕과 습한 바람을 몰고 와 무더위에 길거리의 강아지들도 혀를 빼물고 있었다. 염사치는 말 대신 커다란 누렁개 한 마리를 데리고 주산성으로 찾아갔다. 대가야 병사들도 더위에 지쳤는지 무거운 철갑을 벗고 가벼운 융복을 입고 있었다.

염사치가 후누 장군을 만나 말했다.

“후누 장군, 오랜만에 벗을 보니 반갑네.”

“벗이라고? 누렁개는 왜 데려왔는가. 백제의 개가 되었다고 자랑하러 왔는가! 나라를 바꾼 사람을 어찌 벗이라 하겠는가.”

후누 장군은 더위에 혀를 빼물고 있는 누렁이를 보며 염사치에게 퉁을 놓았다.

“이 누렁이는 우리 집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키우던 개네. 날도 덥고 옛날 자네와 함께 개고기를 먹던 생각이 나서 데려왔네.”

추운 겨울, 아리수 전투에서 고구려군에게 패해 눈이 흩날리고 매서운 바람이 불던 산 속에서 후누와 염사치가 굶주려 시체처럼 죽어가고 있을 때 들개 한 마리가 시체를 뜯어먹으려고 나타났다. 후누가 칼을 빼어 개를 죽였다. 둘은 잡은 들개를 구워먹고 힘을 내어 간신히 기력을 차려 생환할 수 있었다. 이후 둘은 만나면 그 때를 생각해 자주 개고기를 먹으며 우의를 다졌다.

후누는 희미한 옛 미소를 지으며 부하병사에게 개를 잡아 삶아오라고 지시했다.

“염사치, 개고기를 같이 묵자고 온 것은 아닐 터, 찾아온 목적이 무엇인가?”

“이번 전쟁에서 두 번을 이긴 자네의 군대가 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지. 하지만 전쟁 경험이 많은 목만치 군도 호락호락하지 않네. 서로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게 무엇이 좋겠는가.”

염사치는 목만치가 아신왕에게 보낸 서신의 내용을 말하고, 아신왕으로부터 답신이 올 때까지 전투를 중지하자고 휴전을 제의했다.

사실 후누도 협상파인 왕비와 꺽감, 박지 집사의 명을 거역하고 독단적으로 이번 전투를 치른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이겼기 망정이지 졌더라면 그는 역적으로 참수되었을 것이다. 후누는 이번 승리로 협상의 우위를 점한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무술주와 함께 김이 무럭무럭 나는 삶은 개고기가 나왔다.

후누가 염사치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술이나 한 잔 하고 얘기하세.”

둘은 술잔을 뒤집은 뒤 씨익 웃으며 개고기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광개토태왕과 아신왕은 아리수의 하구에 있는 관미성에서 협상했다. 아신왕이 한때는 백제의 성이었던 관미성으로 왔다는 것만으로도 태왕의 노객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태왕은 술과 음악과 여자로 아신왕을 극진히 대접했다. 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일사천리로 협상을 진행했다. 협상의 골자는 모든 것을 전쟁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목라근자와 목만치는 종발성으로 돌아가고, 포로인 이사품왕도 금관가야로 돌아가고, 여옥과 꺽감은 대가야로 돌아가는 것으로 합의하여 천하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다만 서가야 6성은 아신왕의 전리품으로 인정해줌으로써 협상의 발길이 헛걸음이 되지 않도록 만족감을 주었다. 태왕은 아신왕이 돌아가는 길에 열 대의 수레에 고구려 미인과 진귀한 선물을 잔뜩 실어 보냈다.

 

우리말 어원연구
수레. 【S】surei(수레이). 【E】carri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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