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광개토태왕과 백제 아신왕의 관미성 대협상으로 한반도의 남부의 경계선은 여·가 전쟁전의 구체제로 돌아왔다. 그러나 금관가야의 왕 이사품을 제외하고는 각 나라의 수장은 바뀌었다. 신라 왕은 내물 마립간에서 실성 이사금으로 바뀌었고, 임나왜소가 있는 종발성의 주수는 목라근자에서 그의 아들 목만치로 바뀌었다.

대가야는 고구려의 고상지 도독에서 백제의 목만치 바뀌었다가 마침내 대가야 뇌질왕가의 적자 꺽감이 대가야의 왕으로 입성했다. 나라를 잃고 외세에 시달리던 대가야 백성들은 꺽감 왕자와 왕비를 맞이하며 ‘대가야 만세! 꺽감왕 만세!’를 외쳤다.

이번 협상을 주도해 왕가를 복원한 일등공신 박지 집사는 먼저 백제의 부역자와 잔재를 없애겠다며 살생부를 만들었다. 살생부 명단 중 제 일번은 목만치 아래서 최고직인 집사를 한 염사치였다. 염사치는 이번 전쟁에서 목만치의 길라잡이가 되어 대가야의 최고직인 집사가 되었으나 박지가 어라궁에 입성하자마자 제일 먼저 염사치를 잡아 삭탈관직시키고 뇌옥에 가두었다.

박지와 똑같은 일등공신인 후누 장군은 염사치를 비롯해 자신과 친한 자들이 살생부 명단에 들어 있어 못마땅했다.

후누가 박지에게 말했다.

“집사, 경사스런 꺽감 왕자의 즉위식을 앞두고 살생부에 의한 피의 숙청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소. 뒤에 하는 게 어떻겠소?”

“후누 장군의 뜻이라면 존중하겠소. 하지만 즉위식 이후 부역분자들을 그대로 둘 순 없소. 국간들을 숙청해야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고 새로운 왕업이 순조롭게 출발하게 되는 것이오.”

노회한 박지는 판단력이 빠르고 말도 사개가 딱딱 들어맞았다. 무골인 후누 장군은 박지의 논리적인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대가야 어라궁에 꺽감 왕자의 즉위식이 있었다.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과 지배로 오랫동안 단절된 왕위였다. 대정전에는 대가야 왕실 문양인 오동나무 삼엽창기가 높이 솟아 펄럭이고, 그 주위로 각 부처와 가문의 오색 깃발들과 나부꼈다. 나라와 왕실을 찾은 백성들은 새로운 왕의 즉위를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궁궐밖에는 호족과 하호, 노비들까지 몰려들었다.

왕비와 수경은 꺽감과 함께 만족한 얼굴로 대정전 뜨락으로 나왔다. 자색 곤룡포와 찬란한 금빛 모관을 쓴 꺽감이 보좌에 좌정하자 둥둥 북소리가 울리고 나발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박지 집사가 대소신료와 백성들 앞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대가야의 신, 이비가와 정견모주이시여, 그의 아들이신 시조왕 뇌질주일왕이시여. 오늘 꺽감왕자가 대가야의 하지왕으로 즉위하였음을 고하나이다.”

 

우리말 어원연구

AD 400년에 일어난 고구려 가야와의 전쟁. 백제가 금관가야를 부추겨 가야와 왜의 용병이 신라를 침공했다. 이에 고구려는 신라를 구원하고 임나왜소(왜는 임나일본부라고 주장)가 있는 종발성과 금관가야를 쳐 굴복시킴으로써 일시적으로 한반도 4국을 통일한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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