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수경이 박지의 속살거리는 말에 화를 내며 말했다.

“지금 과거의 일로 나를 협박하는 것이에요?”

“협박이 아니라 같이 살자는 것이오.”

“저기 당신이 만들어 놓은 물레방아를 보세요.”

박지의 저택에서 압수할 만한 물건이라곤 소나무로 만들어 놓은 물레방아 정도였다. 마당의 연못에 세워놓은 물레방아는 방아를 찧는 것이 아닌 장식용 물방아이다. 수관으로 계곡물을 받아내 방아살에 흘려보내면 큰 나무바퀴가 돌아가고 원리였다.

“흘러간 물로는 절대로 물레방아를 돌리지 못하는 법이에요. 제 남편에게 얼마든지 얘기하세요. 과거를 발설하는 순간 당신의 입만 더러워질 거예요.”

사정관들은 박지의 저택을 부지런히 수색하고 있었다.

박지는 수경에게 녹차를 대접하며 말했다.

“수경부인, 좋은게 좋은 것 아니오. 마침 물레방아 얘길 잘 끄집어냈소. 난 저 물레방아를 보며 크게 배우는 바가 있소. 대저 인간의 도리는 저 물레방아와 같소. 저 앞의 반은 물의 흐름에 따르지만 저 뒤의 반은 물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소?”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나무바퀴의 반대쪽 물받이는 물을 아래에서 위로 끌어올린다.

박지의 설교는 계속되었다.

“인간도 마찬가지요. 보이는 반은 도리에 맞는 행동을 하지만, 보이지 않은 반은 도리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요. 겉으로는 도덕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이익을 탐하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요.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겠소? 우리 집에서 압수할 물건이 없다 해서 설마 나를 청백한 사람으로 보진 않을 것이야. 수경부인, 예전처럼 서로의 약점에 발을 얹고 즐기면서 삽시다.”

박지는 탁자 밑으로 발을 넣어 수경을 툭툭 치며 말했다.

과거 그녀는 꺽감을 바꿔치기 한 일로 박지에게 협박받아 시도 때도 없이 불려와 늑간을 당했다. 박지의 발끝으로 그날 밤의 비릿한 추억들이 전해져 소름이 돋았다. 고통스런 쾌락과 음흉한 잠자리의 주인공인 저 노회한 박지를 제거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협박과 음모는 계속될 것이다.

수경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는 못해요. 가증스럽고 역겨워요, 집사. 난 당신을 반드시 제거할 것이에요.”

박지가 말했다.

“그렇게는 안 될 걸. 나도 장화황후에게 당신들을 고발하는 서신을 선물과 함께 보냈어. 당신이 찾고 있는 물건들은 장화황후에게 선물로 실어 보냈지.”

사정관들이 박지의 저택을 샅샅이 수색해도 뇌물로 볼 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다고 보고했다.

박지가 느물거리며 말했다.

“수경부인, 당신이 여우라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 하지만 목숨이 아홉 개라는 고양이보다 내 목숨은 더 질겨, 알겠어?”

 

우리말 어원연구

좋다:[S] diyota(디요타), good. ‘좋다’의 고어는 ‘됴타’로 산스크리트어와 어원이 거의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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