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떠올리게하는 겨울진객 까마귀
겉모습만 보고 섣부른 평가해선 안돼

▲ 이동웅 전 울산여고 교장

매년 이맘때가 되면 떼까마귀를 자주 볼 수 있다. 어제 율리식당가 도로변 전신주아래에 차를 세워두고 식사를 하고 나와보니 차 위에 까마귀 배설물이 지저분하게 어지러져 있었다. 이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온 것이다.

어린시절 까마귀와 함께 했던 기억들이 생각난다. 외갓집의 대나무 숲길, 그 속에서 친구들과의 병정놀이 추억 등. 나이를 먹을수록 고향과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버렸다.

외롭게 서있는 대나무보다 까마귀의 무리들이 대나무 가지에 앉아있는 풍경이 훨씬 더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겨울철이면 추수를 마친 논에서 먹이를 찾아나서는 낮 동안을 제외하고는 까마귀의 무리는 항상 대밭 주위에 머물러 있었다. 대밭이 까마귀의 생활근거지이다.

먹을 것과 단백질 공급이 부족했던 그 당시에는 밤이면 외가 아재들과 같이 까마귀 포획작전에 나선다. 전등과 긴 대나무 빗자루를 준비해서 대밭으로 살금살금 들어가 대나무 밑의 배설물을 촉감으로 확인한다.

배설물이 말랑 말랑하면 분명 까마귀가 바로 그 대나무에 앉아 있다. 둘이서 대나무를 힘껏 흔들면 까마귀가 ‘푸드득’거리며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진다. 다음엔 전등을 비춰 빗자루로 덮쳐 잡는다. 어떨 땐 두세마리가 동시에 떨어지기도한다. 30분가량 추운겨울 밤의 즐거운 까마귀 포획작전이 이어진다.

무와 파, 쌀을 넣어 까마귀온밥을 끓여 야식을 배불리 즐기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의 그 까마귀온밥 맛은 지금 어느 음식 맛에도 비교할 수 없는 별미 중의 별미다. 언제 다시 이런 추억을 재현할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꼭 해보고 싶은 충동이 지금도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렇게도 큰 대밭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까마귀가 흉조일까요, 길조일까요. 대부분은 까마귀하면 불길한 철새로 생각하지만 나에겐 어릴 적 추억 때문인지 까마귀가 친구처럼 정겹게 느껴진다.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소냐.” 등 겉모습만으로 매사를 섣불리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혹시 내 주변의 남녀 친구나 다른 사람을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평가해버리지나 않는지 까마귀 생각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본다.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는 대밭의 풍경과 그 속에서의 놀이, 그리고 정서가 그리워지는 저녁이다.

이동웅 전 울산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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