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변호사에서 대통령으로
모래시계 검사에서 당대표로
재벌 3세 막말에 수모 겪기도

▲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올해는 다사다난의 해를 넘어 대사대난의 해였다. 후세의 사가들은 2017년을 뭐라고 이름 지을지 모르겠다. 조선시대의 사관이었다면 ‘기유정변’ 정도로 기록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역사의 급물살 속에서 수많은 율사들이 명멸한 한해이기도 하였다. 역사의 물줄기를 헤치고 대통령직에 오른 문재인 변호사는 난세를 이끌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되었다.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지사는 일약 대통령 후보를 거쳐 보수 야당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울산 출신 이정미 헌법재판관은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문을 낭독함으로써 율사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대란속의 특검으로 임명돼 현직 대통령과 수많은 고관대작을 줄줄이 구속시켜 역사의 물줄기를 돌린 박영수 변호사와 특검팀의 수석 검사로 활약하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돼 적폐청산 수사에 진력하고 있는 윤석열 검사가 당대 최고의 칼잡이 율사로 등극했다. 일약 춘천지방법원장에서 대법원장으로 발탁된 김명수 대법원장도 정변의 수혜자라 할 것이다.

대통령 탄핵법정에서 혼신의 힘으로 변론을 편 김평우·서석구·조원동 변호사, 전 국민의 공적이 된 최순실을 변호하고 있는 이경재 변호사, 쓰러진 주군을 업고 고독한 법정 투쟁을 벌인 유영하 변호사 등 국정농단 주역들의 변호인들은 엄청난 비난 댓글 폭탄을 맞기도 했다. 변호사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에 의지해 아무리 흉악범이라 해도 그 사람이 지은 죄 만큼만 처벌받도록 변론, 피고인의 작은 인권이라도 방어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변호하는 모습이 정서상 얄밉기는 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변호인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은 변호인의 역할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국정원 댓글수사방해’ 사건에 연류돼 참고인 조사를 받은 후 자살한 고 정치호 변호사와 같은 사건에 연루돼 구속실질심사를 앞두고 자살한 고 변창운 검사 등은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물론 준법에 앞장서야 할 율사가 국가 조직 내에서 불법을 자행했다면 처벌 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두 젊은 율사를 죽음으로까지 내몬 이유가 무엇인지도 철저히 수사해 혹시 두 율사의 인권을 보살피는데 소홀함이 없었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변호사들이 세무사법개정반대 집회를 열고, 1인 시위를 하는 생소한 풍경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면 자동적으로 세무사 자격도 부여되었으나 이번 개정안에서 변호사 자격에서 세무사 자격을 박탈하자는 것이다. 변호사의 유사직역이라고 통칭되는 세무사, 법무사, 변리사, 손해사정사 등은 원래 종합적인 전문 법률지식을 습득하고, 법정에서 변론이 가능한 변호사가 수행함이 원칙이다. 그간 변호사 숫자의 부족으로 실무 경력자나 별도의 시험을 통해 선발된 사람에게 자격을 위임해온 것이 현실이었다. 앞으로는 이러한 유사 직역이 모두 변호사의 업무 영역으로 흡수돼 국민들이 종합적인 법률 전문가가 제공하는 양질의 서비스를 받도록 해야 한다.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변호사 숫자를 대폭 늘린 로스쿨제도를 도입한 취지도 여기에 있다. 이번에 몇몇 국회의원들이 이러한 시대정신을 역행해 특정이익 단체를 대변하는 입법안을 직권 상정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벌어진 소동이다.

치욕적인 수모를 당한 율사들도 있다. 대형 로펌의 신입 변호사 회식 장소에서 재벌3세가 동석해 변호사들에게 막말을 하고 폭행을 하는 등 난동을 부린 사건이 발생했다. 대한변협에서는 고발 조치를 하는 등 격분하고 있으나 정작 당사자는 처벌을 원치 않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우리 사회가 모든 가치 척도를 돈에 두는 천민자본주의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심히 우려되는 장면이다.

유달리 율사들의 빛과 그림자가 확연한 올 한해가 아니었나 싶다. 그럼에도 우리의 법치주의와 정의를 조금씩 전진시키는 힘은 수많은 무명의 변호사들이 적정한 수임료를 받고 전문지식과 성실함으로 무장해 법정에서 벌이는 작지만 치열한 전투들의 총합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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