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봉 사회부 차장

소방공무원들은 참을성이 강한 것 같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참는다. 워낙 말을 아끼다 보니 원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소방공무원은 국민들의 신뢰와 사랑,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조직이지만 조직에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난 21일 발생한 제천 화재 참사와 관련해 울산 소방의 인력 및 장비 현황을 취재했다. 법정 필요인력조차 채우지 못해 인력 충원이 절실하다는 제보에 따라 인력 충원이 시급하다는 취지의 기사를 준비하면서 울산 소방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소방공무원에게 협조를 구했다. 관계자들은 취재 취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막상 내부상황을 공개하는 것은 꺼렸다. 일선 안전센터는 소방서와, 소방서는 소방본부와, 소방본부는 시와 이야기할 것을 권했다. 알고보니 필요한 정보는 이미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돼 있었다.

지난 10월께 만난 한 고위 소방공무원도 그랬다. 그는 119센터에 세워진 소방차량들이 인력 부족으로 대형 화재 시 제 역할을 못할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충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을 꺼내면서도 “지금은 예산 시즌으로 민감한 시기니 기사화는 잠시 미뤄 달라”고 당부했다.

이런 문제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힘없는 조직’으로 취급돼 온 소방조직의 태생적 한계에서 기인한다. 보도로 인한 개선보다 조직을 향해 불어올지 모르는 역풍을 우려해 목소리를 낮추는 것으로, 조직의 독립성 결여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문제로 보인다. 국가직인 경찰과 달리 지방직인 소방은 광역지자체의 지시 하에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문제 제기 시 닥칠지 모르는 불이익을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조직내 만연하다.최근 정부는 “국민의 안전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면서 2019년 1월까지 지방직 소방공무원 전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소방공무원의 신분은 국가직으로 전환하고 처우 개선 및 지역 간 투자격차를 해소하겠는 것으로, 정부 주도에 따라 시도별 차별 없는 소방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소방의 국가직 전환은 반쪽짜리다. 소방사무는 그대로 지방사무로 유지됐고 인사 및 지휘 통솔권 역시 지자체장에게 남겨뒀다. 소방재원에 대한 안정성은 확보시켰지만 예산편성이나 집행권한도 그대로 지자체에 남겨뒀다.

조직을 관리하고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사권과 예산편성권은 가장 기본이자 핵심이다. 국가직 전환에도 불구하고 주요 권한을 소방이 아닌 지자체가 여전히 독점해 사실상 조직을 관리한다는 것은 현행 체계가 사실상 유지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방조직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소방정책이 후순위로 밀리는 구조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대로라면 신분만 국가직으로 달라질 뿐 사실상 근무환경은 그대로일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여전히 지자체의 눈치를 보는 조직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방관은 재난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영화 속이 아닌 현실 속의 슈퍼맨이다. 국가는 이들에게 제복을 입혔고 그에 따르는 사명도 부여했다. 하지만 사기가 수반되지 않는 사명은 공허하다. 대부분의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종’ 1위를 도맡는 소방관들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춘봉 사회부 차장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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